1863년 11월 19일. 남북전쟁의 격전지 펜실베니아 게티스버그에서 전몰 장명에 대한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서 링컨은 단 2분만에 끝난 아주 짤막한 연설을 했다. 그리고 ‘링컨의 2분 연설’이라는 이름을 얻은 게티스버그 연설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지금으로부터 네 개의 20과 7년전(87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위에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로 시작하는 연설문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로 끝을 맺는다.

필자가 유독 의미를 되새기며 읽는 부분은 바로 ‘국민을 위한’이라는 문구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국민을 위한’이라는 부분에 관련성이 깊다. 즉 정부의 경제 정책은 무릇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이에 따라서 정책 수립이나 성과 평가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냐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국내 경기 침체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2013년 2/4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이던 국내 경기는 2014년 2/4분기 세월호 침몰, 4/4분기의 재정절벽, 2015년 상반기 수출 급감으로 이어지는 경기 침체 요인들로 인하여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갑자기 발생한 메르스사태는 결정적인 한방이 되었다. 소비와 관광객 급감이 동시에 발생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경기 급락의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한편 실제 GDP가 잠재 GDP를 밑도는 마이너스 GDP갭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성장 잠재력 자체가 훼손되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2년부터 시작된 마이너스 갭은 내년까지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비와 관광객 급감이라는 메르스사태의 여파로 가장 고통을 받는 계층은 종사상지위로는 영세자영업과 그 종사자, 소득계층으로는 서민이나 하위계층, 산업별로는 도소매음식숙박 등으로 구분되는 상대적 경제적 약자에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은 소득 급감으로 인한 고통을 가장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빠지기 일쑤다. 더구나 한계 상황에 내몰려 이혼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긴급한 경기 부양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기 부양 규모로는 최소 22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GDP 증가율을 0.3%p 끌어올리는 정도의 효과이다. 메르스 사태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22조원보다 더 많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마침 정부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추경(안)을 내왔다.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는 어려운 국민의 고통을 덜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문제는 국회다. 추경(안)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새누리당은 내부 분란 때문에 추경은커녕 경제관련 법안도 손도 못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추경(안)이 나오자마자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의 사유야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틀림없이 당리당략적인 계산이 있을 것이다.

사실 최경환 경제팀도 또 다른 계산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전혀 부인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추경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국민을 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새누리당은 당 내부의 복잡한 일보다도 시급히 처리해야할 ‘국민을 위한’ 사안이고, 새정치민주연합도 그 어떤 당리당략보다 우선하는 ‘국민을 위한’ 일이다.

필자는 오늘자로 <경제광장> 기고를 마친다. 마지막 회가 되어서야 비로서 ‘국민에 의한’이라는 구절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에 의한’ 국회가 ‘국민을 위한’ 일을 치워놓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대리인 비용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점은 인정하는 바이다. 비단 국회에만 대리인 비용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간들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정말로 시급한 일을 만나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만사를 제쳐두고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링컨의 2분 연설’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국민을 위한’ 일에는 만사 제쳐두고 앞장서는 국회를 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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