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가져온 미국 발(發)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흔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실패를 지적한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을 두고 미국 자본주의의 두 시각이 대립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잡지 ‘포브스’의 발행인인 스티브 포브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책임으로 정부가 후원하는 거대 금융회사인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을 지목하고, 미국의 금융 위기는 정부의 시장 간섭에 따른 정책 실패라 지적한다.

이에 반해 존 호프 브라이언트는 책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구하는가’에서 정부의 지원에 따라 두 금융회사를 통해 실행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성과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한 비우량담보대출 상품의 판매를 권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감세 혹은 부유세 정책에 대한 논란도 들 수 있다. 이른바 보수 진영에서는 감세를 주장하고, 진보 측에서는 부자 증세를 지지한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현재 서양의 보수와 진보 진영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입장은 주로 경제성장과 부(富)의 불평등 완화라는 두 관점에서 구별되고 있다. 경제성장을 주장하는 쪽은 이른바 시장의 자유를 우선시하고, 부의 불평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규제를 지지한다. 이를 미국식 자본주의와 유럽식 자본주의의 모델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차이로 설명해도 될 듯하다.

사실상 세계의 주요국들은 미국식 혹은 유럽식 자본주의에서 나타난 경제성장과 경제적 평등의 정책 사이에서 경제정책의 기조를 선택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부문 개혁에서 경제정책의 기조를 알 수 있다.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개혁의 추진 방향에는 성장 우선 경제정책이 기조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 사회는 시장 규모가 큰 미국식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한다고 해도 미국에 비해 그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4대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이 단기적 경기부양보다 구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테면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경제 혈관을 타고 사회 곳곳에 그리고 필요한 곳에 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에 저금리의 혜택이 갈 수 있게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개혁이 이루어지게 저금리의 자금이 사용돼야 할 것이다.

또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려는 대학의 구조조정 역시 단기적 (지역)경기부양 정책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대학 정책에 경제적 관점이 필요하다면 대학 교육이 바로 자유시장의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대학의 정원 감축을 강제하는 구조조정 계획에서 자신의 경제정책 기조와 반대로 대학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것은 정부와 대학, 지역경제 모두에 뼈아픈 실패를 안겨줄 것이다.

공무원연금과 공적연금 개혁은 어떤 식으로든 당사자와 정부 그리고 여야의 합의에서, 노동개혁 역시 노사정 원탁회의를 통한 합의에서 개혁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즉 정부가 진정으로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원한다면 먼저 사회의 지속가능한 소통 구조의 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이자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21세기에는 자본주의의 성패가 더 이상 경제성장에만 달려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경제적 평등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각 국가의 상황에 맞게 경제적 성장과 부의 평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황금 비율을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한 국가의 경제정책은 사회의 소통 구조를 통해 경제적 공동 가치를 도출하는 작업이자 사회적 공동 가치에 따라 경제정책을 선택하는 작업이다. 박근혜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도 이런 점에서 그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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