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 오는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 김모(34). 신혼집을 예비신부의 친정 집 근처에 마련하기로 했다. 본인도 외아들이지만, 외동딸인 예비신부를 배려해 내린 결정이다. 더욱이 김 씨는 이미 연애 기간 동안 처가를 ‘제집 드나들듯’ 오갔던 상황. 그는 “거의 매일같이 장모님 되실 분을 뵙다보니 친 어머니같단 느낌을 받았다”며 “처가든 본가든 어느 한 쪽에는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긴 할 것 같아, 둘 다 편하고 익숙한 처가를 택했다”고 말했다.

시집간 딸은 가족이 아니라 남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의 ‘출가외인(出家外人)’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최근엔 아들 둔 어머니들 사이에서 ‘출가외인’이 딸이 아니라, 아들을 지칭하는 말처럼 느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결혼 후 아이를 처가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신 모계사회 구조가 되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손자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결혼 후 아이를 처가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신 모계사회 구조가 되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손자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 군대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 등의 ‘우스갯소리’가 떠돌기도 한다. 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족에 살갑지 못한 아들의 태도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A(73ㆍ여) 씨도 아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적잖다. 아들 하나 낳기 위해 딸을 6명이나 내리 낳았던 A 씨였다. 그렇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기에, 날 때부터 지금까지 무리를 해서라도 바라는 것은 모두 안겨줬다. 딸들 대학 학비는 내준 적 없어도 아들 학비 만큼은 딸들이 준 용돈을 털어서라도 내줄 정도였다.

그러나 A 씨는 최근들어 아들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는 생각을 부쩍 하고 있다. 바로 아래 층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이 자신보다 사돈댁과 더 자주 연락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자신에게 “장모님이 아내에게 땅을 물려주시면 거기에 집을 짓고 장모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해, 크게 충격을 받기도 했다. A 씨는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고마움은커녕 섭섭한 소리만 한다”며 “외려 딸들이 자신에게 더 잘하는 것 같다”고 섭섭한 마음을 털어놨다.

아들만 둘이라는 B(61ㆍ여) 씨도 장가간 장남에게 서운하긴 마찬가지다. 직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결혼 후 사돈댁 근처에 집을 마련한 아들은 손주가 태어나자 자발적으로 ‘처가살이 아닌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출산 후 완전히 몸을 회복하지 못한 며느리가 친정에서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B 씨는 “서운해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둘째도 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먼저 와서 말을 거는 일이 좀처럼 없다”면서 “요즘은 내가 자식이 있긴 한 건가, 서글플 지경”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B 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딸이라도 하나 더 낳을 걸, 후회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가부장 중심의 전통적 가족 형태가 해체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결혼 후 아이를 처가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신 모계사회 구조가 되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손자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결혼 후 아이를 처가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신 모계사회 구조가 되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손자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시어머니가 전통 질서 속에서 며느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며, “며느리는 물론 아들까지 소유하고 지배하는 게 불가능하다보니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 때문인지 최근들어 딸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1990년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는 116.5였지만, 이를 정점으로 남아 출생은 꾸준히 줄고 있다. 2007년부터는 여아 100명당 남아가 약 107명 수준을 유지하며 정상성비 구간으로 들어왔다. 2013년과 2014년에는 105.3명을 기록했다. 이는 1981년 출생성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