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여러분은 “개처럼 살기보다는 영웅처럼 죽고 싶다”는 말과 “살아남은 쓰레기가 죽은 영웅보다 낫지”라는 말 중 어느 쪽에 더 공감하시나요? 전자는 홍콩 느와르의 명작 ‘첩혈쌍웅’ 속 대사이고, 후자는 좌백 작가의 작품으로 신무협의 효시로 꼽히는 ‘대도오’ 속 문장입니다. 기자의 마음은 전자와 후자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갑니다.
여러분 역시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살 바에 뭐 하러 사는가”라고 푸념하며 삶이라는 놈의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고 싶다가도, “이렇게나마 사는 것도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우리네 일상이니까요. 멋있게 상사의 얼굴에 사표를 던지는 상상을 하다가도,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생각하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야 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사랑한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잃을 것이 별로 없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다들 무서울 것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모두들 그 시절 자신이 꽤 멋져 보였던 순간 하나 쯤은 가지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격은 자연스럽게 둥글둥글해집니다. 아니 둥글둥글해져야만 합니다. 가족을 비롯해 지켜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니까요.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내가 흔들리는 순간, 동시에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요.
나를 잊은 채 사는 바쁜 삶이 공허해지는 순간, 무엇이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줄 수 있을까요? 노사연이 7년 만에 발표한 신곡 ‘바램’은 진솔한 가사로 “사랑한다”는 애정 어린 한 마디의 큰 힘을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인 존재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일을 살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가왕’ 조용필이 30년 전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통해 노래했듯이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사랑 때문”이니까요. “똥개도 제 집앞에서 싸우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처럼, 나이 들어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남은 삶의 가장 커다란 뒷배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주겠어요? 여러분 옆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바로 그 사람말고 더 있나요?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바램’은 별다른 홍보 활동을 벌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서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온라인 환경에 밝지 않은 수많은 중장년층이 알음알음 유튜브를 찾은 까닭은 그만큼 사랑이 고팠기 때문 아닐까요? 나이듦이 낡음으로 치부되는 시대를 사는 중장년층에게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란 위로의 힘이 컸나 봅니다.
조금씩 익어가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햇살이 돼줘야겠죠. 뜬금없고 어색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에게 지금 전화를 걸어보세요. 그리고 말해보세요. “사랑한다!”. 저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