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씨의 죽음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된 조그만 쪽지가 정치권을 뒤 흔들었고 급기야는 국무총리 사퇴라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그는 성실한 기업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개된 그의 일정을 보면 하루 종일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와 만나 돈과 연줄로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이를 축으로 기업을 지키고 키워 온 듯하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쪽지에 나타난 거물(?)들은 하나 같이 그를 모른다고 잡아 떼고 있다. ‘황당무계하다,’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금품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섭섭함 때문일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억이 없다’등 예전에 많이 들었던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 진실 여부나 법적 책임은 수사로 매듭지어지길 바라지만 정황상 이들의 해명(?)에 선뜻 동의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들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이 이완구 국무총리이다. 같은 고향, 같은 정당에서 국회의원도 지낸 처지에 ‘그를 알지 못한다’는 첫 반응부터 엇박자는 시작되었다. 그 후 200여 차례나 서로 전화한 사실, 각종 모임에서 밝은 표정으로 회동한 장면 급기야는 선거 때 돈은 갖다 준 일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자, 알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결국 이완구씨는 돈 받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거짓말 때문에 두 달여 만에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처신이 시정잡배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선 성완종씨는 너무 쉽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 자체는 안타까운 일지만 큰 기업을 일구어 낸 사람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쁜 방법을 선택했다. 또 ‘신뢰’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진흙탕을 만들어 놓고 떠났다.

리스트에 나타난 정치자금 문제는 수사를 통해서 진위가 드러나겠지만 일단 정치인들의 고질병인 거짓말 경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원래 진실은 단순하다. 있는 것을 있다고 얘기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진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복잡하게 얘기하는 것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돈을 받은 사실 보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그들의 모습 때문 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정치 지도자, 기업인들의 소인배 같은 민낯을 보는 듯해서 황당하고 씁쓸하기 짝이 없다. 대의를 놓고 친밀하지만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군자이고 소소한 이익을 두고 함께 힘을 합하지만 친밀하지 않은 것이 소인배들이다.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근본을 묵살하고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자기를 속이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본 것 같아 창피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마다 후렴처럼 따라 오는 ‘개혁’에 신물이 난다. 정직함과 당당함이 이 나라를 움직이는 근간(根幹)이 되어야 한다. 이런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물질적인 풍요를 일구어도 선진국 진입은 어림없는 얘기다.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