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사실상 확정단계였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무산되면서 러시아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김 제1위원장이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북한 내부 문제와 연관된 것’일뿐라고 했지만 일부 언론은 노골적인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 거부에 대한 진실한 이유가 밝혀지다’는 역설적인 제목의 기사에서 김 제1위원장의 방러 무산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식으로 비꼬았다.

신문은 먼저 러시아가 초청장을 보낸 68개국 가운데 25개 내외의 국가 정상만이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힌데 대해 “전승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외국 정상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숫자풀이 노래를 연상케 한다”며 “첫 번째 사람은 올 수 없고 두 번째 사람은 아프고 세 번째 사람은 오는 게 불가능하고 네 번째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식으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특히 참석이 기정사실화됐던 김 제1위원장이 불참으로 돌아선 것과 관련, “최근 평양에서 대량 숙청이 이뤄졌다는 보도를 감안하면 김정은은 가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크렘린으로서는 ‘젊은 독재자’의 변덕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면서 “그의 부재가 살인과 무례로 가득 찬 손을 행사장 연단에서 공개적으로 잡아야 하는 불편을 참고 견뎌야했을 서방 지도자들을 안심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김 제1위원장이 올해 들어서만 차관급인 임업성 부상과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15명의 고위관리를 처형한 것으로 알려진가운데 정치적 숙청이나 하면서 아무 이유없이 불참했다는 비난인 셈이다.

신문은 이와 함께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의 불참 소식은 평양에서 북ㆍ러 정부간 협력위원회를 마치고 며칠 전 돌아온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극동개발부 장관에게 전달됐을 수 있다”면서 “북한측은 상호이득이 되는 협력에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으며 오로지 러시아측의 무상원조만 고집해 협상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현재 주북한 대사를 포함한 러시아 외교관들 중에 김정은은 물론 그의 측근들조차 직접 접촉할 창구를 가진 사람은 없다”면서 “지금은 전임 ‘주체국가’ 지도자 시절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러시아 전문가들은 김 제1위원장의 급작스런 방러 무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민대에 재직중인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러시아 뉴스통신 가제타루와의 인터뷰에서 김 제1위원장이 3년여 동안 집권하면서 한번도 외국 지도자를 만난 적이 없다며, 모스크바 전승 기념행사가 다자외교무대라는 점 때문에 꺼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란코프 교수는 “김 제1위원장이 어떤 이유에서건 외국 지도자와의 접촉을 꺼린다면 여러 외국 정상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다자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상한 결정”이라며 “다자행사에선 복잡한 외교 관례를 지켜야 하고 제때에 악수를 하지 않는 등의 사소한 실수도 언론이 대서특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제빈 모스크바 극동연구소 한반도연구센터 소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사일 발사 중단 등의 요구를 할 가능성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제빈 소장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노동당 창당 70주년으로 북한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을 이용한 신형 위성 등을 발사하고 싶을 것”이라며 “김 제1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탄도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등의 약속을 하는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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