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LPGA 롯데챔피언 때 신중하게 플레이하고 있는 김인경의 모습. 검게 그을린 피부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연습벌레인지, 그리고 진지한 눈빛은 얼마나 승부욕이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얼마전 미LPGA 롯데챔피언 때 신중하게 플레이하고 있는 김인경의 모습. 검게 그을린 피부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연습벌레인지, 그리고 진지한 눈빛은 얼마나 승부욕이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끝나지 않은 연습벌레의 불운탈출기‘짠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얼마 전 미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의 마지막 날 경기를 보다가 울컥하고 말았다. 김인경 때문이다. 김인경은 이 대회 첫 날 7언더파로 선두로 나섰고, 마지막 4라운드도 챔피언 조에서 박인비, 김세영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모처럼 우승컵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두 개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3위에 그치고 말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우승을 차지한 김세영에게 쏠렸다. 이날 나온 한 기사의 제목은 왜 이리도 가슴을 후벼 파는지…. ‘김인경, 끝내지 못했던 시련’이었다. 그렇다. 2007년 미LPGA에 데뷔한 김인경은 통산 3승을 거둔 정상급 선수였지만 ‘비운의 골퍼’로 통한다. 연장전에서 5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고, 특히 2012년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날 마지막 홀에서 50cm 파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우승을 놓친 아픈 기억이 있다. 상처가 컸을까? 지난 해 7월 유럽투어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미LPGA에서는 2010년 11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이후 지금까지 우승이 없다. 김인경을 만난 것은 2007년 그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였다. 친분이 두터운 조범수 프로의 제자였던 까닭에 마침 미국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를 찾아온 것이다. LA의 한 골프장에서 주로 라운드를 가졌는데 가끔 레슨도 해 주고, 조범수 프로님이 좋은 스폰서를 알아봐 달라고 해서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청을 넣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필자가 본 김인경의 골프는 대단했다. 정말 공을 잘 ‘깠다’(보통 프로들은 이렇게 ‘볼을 깐다’라고 표현한다). 공을 다루는 감각이 남달랐고 대성할 자질을 갖췄다. 뚜렷하게 뭐가 좋다라고 말하기도 어려웠지만, 거꾸로 지도자가 봤을 때 아무 것도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다부졌다. 키가 좀 작은 것을 빼면 도저히 흠이 없어 보였다. 아직 성적을 내기 전이었지만 한국 여자프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성적이 좋을 때 김송희의 스윙 모습. 필드 위에서 평소생활에서도 김송희는 좀처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성격을 가졌다.
한참 성적이 좋을 때 김송희의 스윙 모습. 필드 위에서 평소생활에서도 김송희는 좀처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성격을 가졌다.

특히 그 근성에 놀랐다.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하다 보면 몇 달러짜리 가벼운 내기를 하는데 김인경은 한 번 지면 딸 때까지 달려들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졌는데도 또 라운드를 나가자고 하기도 했다. 어떤 스포츠든 근성이 강하다는 것은 칭찬으로 해석된다. 당시에도 ‘근성이 참 좋은데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결과론이지만 김인경은 이 여유가 부족해 지금 고생하지 않나 싶다. 기자에게 들었는데 김인경은 2012년을 앞두고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기 위해서는 더 연습해야 한다”며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다고 한다. 2011년까지 3년 연속 상금 톱10에 이름을 올린 까닭에 2012년 최고를 노린다는 각오가 이처럼 하늘로 치솟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2012년 첫 메이저 대회에서 50cm가 모자라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후 엄청난 불운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슴이 아플 김인경에게 상처를 자극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아직도 좋은 샷을 보유한 만큼 이 점만 보완하면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인경아, 맨날 샷과 스코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산도 보고, 들도 보고, 이것저것 다른 생각도 하면서 골프를 치면 어떨까?’ 이 얘기를 꼭 전하고 싶다. 감추지 말고, 확 터트려보자! 송희야이와 관련해 김송희 얘기도 꼭 하고 싶다. 2006년 미 LPGA 2부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랐던 김송희는 2008년부터 3년간 상금랭킹 14-11-8위를 기록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것은 3년 내리 이렇게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우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2009년과 2010년 48개 대회에 출전해 10위 안에 28번이나 들었는데도 우승은 늘 비켜갔다. 준우승만 6번이었다. 평균타수 4위에 오른 2010년에는 우승 없이 가장 많은 상금을 받았다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오죽하면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붙었겠는가.계속되는 비운에 지친 탓일까, 김송희는 2011년 상금랭킹이 33위로 처지더니, 2012년부터 급격히 샷이 무너졌고, 2013년을 마지막으로 미LPGA 1부 투어에서 사라졌다. 지난해에는 2부 투어 시드마저 잃었고, Q스쿨에서도 예선탈락해 뛸 대회가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는 것이 무서워질 정도로 심각한 입스에,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까지 겹치는 등 도저히 정상적인 골프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물론 듣기로는 지금도 부활을 위해 마치 무명 주니어시절처럼 골프장에서 혼자 땀을 쏟고 있다고 한다.

김송희는 지나치게 근성이 없다는, 아니 그 근성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김인경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공을 잘 깠는데’ 좀처럼 감정표출이 없었다. 프로는 좀 파이팅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순간 버디를 잡으면 업(UP) 될 줄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타이거 우즈도 한창 잘 나갈 때 결정적 버디를 하면 격한 감정을 토해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거꾸로 샷이 안 돼 열을 받으면 골프채로 바닥을 내리 찍으며 성을 낼 필요도 있다. 필자도 선수생활 때 열을 많이 내곤 했다. 한 번은 선배인 최상호 프로와 라운드를 하는데 3퍼팅을 한 후 얼마나 화가 나는지 퍼터로 신발 뒷꿈치를 내려친다는 게 그만 복숭뼈를 정통으로 때리고 말았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아픈지 모를 것이다. 정말이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며칠을 절뚝거리면서 시합을 다녔다. 혹자는 보기 싫다며 프로들에게 절대 화내지 말 것을 주문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느 정도의 감정 표출은 무방하다. 갤러리도 이해하고, 승부사로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또 보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결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말이다. 골프는 첫날, 둘째날은 침착하게 자기 골프를 하지만 마지막날 우승권에 들어서면 완전 분위기로 친다. 기술로 치는 게 아니다. 흐름과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렇게 마지막 날 골프가 잘 돼 우승컵을 차지할 때는 무아지경에서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신들린 듯하다’는 표현과 일맥상통한다. 나 혼자 있는데 감정 표출을 어떻게 자제할 수 있겠는가?물론 예전의 안병훈처럼 경기 중 이성을 잃어도 안 된다. 안병훈은 지금보다 어렸을 때 한 번 큰 미스샷이 나오면 아예 포기해 버렸다. 탁구스타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근성이 강했던 것이다. 근성 없으면 화도 안 낸다. 최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골프 실력이 늘었다기 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어느 정도 터득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참 대조적이다. 동갑내기 김인경과 김송희는 한 쪽은 근성이 너무 강해서, 한 쪽은 근성이 너무 없어서 고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병훈의 예처럼 지금도 충분히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골프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용기를 내 자신의 기질 중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면 된다. 안병훈의 예처럼 말이다. 결코 늦지 않았다. 같은 88년생인 박인비는 여전히 최고의 골퍼로 투어를 호령하고 있고, 87년생 최나연도 올시즌 1승을 추가했다. 모처럼 편하게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김인경, 김송희, 언제 한 번 라운드를 돌자꾸나. 너희의 마음 고생을 이해한단다. 비오는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단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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