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자연재해를 방지한 성공한 사업이라는 평가와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국고를 낭비한 실패한 사업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요. 유민상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민상은 뚱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더니 황망한 웃음을 뱉으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십니까”라고 한다. 지난주 첫 방송돼 방영 2회차를 맞은 KBS2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다. 날선 풍자와 조롱으로 한 때는 정치시사 코미디의 장을 열었던 ‘개그콘서트’는 오랜 시간 풍자에 취약했다. 대한민국 일등 코미디 프로그램은 주시하는 눈이 많았다. 연이은 소송과 징계도 따라왔다. 2012년 ‘사마귀 유치원’에선 정치인들의 공천 관행을 꼬집다 고소 고발을 당했고, ‘용감한 녀석들’에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공약을)지키길 바래”라고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그래도 2013년엔 ‘오성과 한음’ 등을 통해 갑을논란의 불을 지른 남양유업 사태나 세 회피로 파문을 일으킨 페이퍼컴퍼니 사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태까지 꼬집었다. 그 후 ‘개콘’의 정치풍자는 안타깝지만 자취를 감췄다. ‘도찐개찐’이 시사이슈를 건드려왔지만 ‘웃찾사’의 맹공격을 받아내긴 힘들었다. 한주간의 이슈를 철저하게 검증해 시청자의 가려운 속을 긁어온 ‘LTE뉴스’가 해야할 말을 알아서 다 해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민상토론’에 직설화법이란 없다. 그럼에도 이 코너가 진짜 풍자 코미디인 것은 지금 우리 시대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민상토론’에서 저격수는 오로지 개그맨 박영진뿐이다. ‘토론’ 형식을 취한 코너답게 한 주간의 이슈를 두 명의 개그맨에게 던진다.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대고 주저하다가 한 마디씩 흘리는데, 박영진은 하이에나처럼 이를 낚아채 물고 늘어진다. 사실두 사람의 답변은 본질에는 닿아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이를 테면, 지난 12일 방송에선 ‘자원외교’를 주제로 난상토론을 벌이라고 화두가 던져지자 유민상은 “이게 무슨 심야토론이야 백분토론이야, 아 백분토론은 MBC지?” 라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를 꺼려하자, 박영진은 “MB? MB? MB가 잘못했다? 이명박씨?”라고 되물으며 유민상을 궁지에 몬다. 김대성에게도 의견을 묻는다. 김대성은 “또 저요?”라며 울상이 돼 “이게 복잡한 문제이긴 한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박영진은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이라고 되묻는다. 당황한 김대성이 “잘못했어요”라고 하자 박영진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문재인이 잘못했다?”라며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문재인 대표를 걸고 넘어지는데 문재인 대표 저격수입니까?”라고 말한다. 별안간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당혹스럽기 그지 없는 두 사람의 표정에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급기야 박영진은 “시청자 여러분, 지금 두 개그맨이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개그콘서트’를 연출하는 조준희 PD의 의견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분명히 해둔다. 사실 이 코너에서 유민상과 김대성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하지 않는다. 유민상은 “그런 걸 왜 개그맨들에게 물어봅니까”라는 이야기도 한다. 이 같은 답변에 박영진은 “개그맨들에겐 묻지 말라. 의견이 없다?”라고 되묻는다. 뒤이어 “의견은 있는데 개그맨이니까 바보흉내나 내면서 살이나 디룩디룩 찌겠다?”라고 꼬집는다. 거기에 대고 김대성은 “제가 뭘 알겠어요”라며 울먹인다.

이 상황에서 객석은 연신 웃음이 터져나온다. 단지 두 사람의 당혹스러운 연기가 스며든 얼굴 표정이나, 궁지에 몰려 후환을 근심하는 모습이 우스워서는 아니다. 이미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자체검열이 생활화된 때에 ‘코미디의 본령’과도 같았던 시사풍자는 사라졌고, 일등 코미디 프로그램의 개그맨들은 입을 다물었다. 통쾌한 직공은 나올 리가 없다. 하지만 풍자 코미디가 답답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비틀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민상토론’이 바꿔놓았다. 풍자조차 할 수 없는 시대,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말 한 마디를 던지는 것조차 수없이 고민해야 하는 현재 방송가 분위기와 사회상이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 코너를 통해 고스란히 풍자됐다. 너무나 잘 알고 공감하는 현실이기에 적잖이 당황한 두 사람의 얼굴을 통한 웃음이 마냥 개운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같은 시대를 함께 하고 있다는 공감대의 웃음이었다.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은 “한주간의 재밌는 이슈를 개그맨들의 시각으로 더 재밌게 풀어보는 뻔뻔한 이슈토크”라고 시작한다. 다루는 내용이라곤 4대강, 자원외교, 무상급식 논란인데, 이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이슈’라고 풀어놓는다. 코미디보다 더 황당무계한 사건들이 빈번한 사회였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민상토론’은 방송 2회차, ‘개그콘서트’ 코너별 시청률에서 최강자에 올랐다. 18.2%(닐슨코리아 집계,전국 기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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