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가짜 광해가 된 광대 하선(이병헌 분)이 물었다.
“대체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1960년대말, 북파공작을 목적으로 창설된 ‘684부대’에 관여한 중앙정보부 간부(이효정 분)가 답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의지를 갖고 결정을 하고 명령을 내린다. 그것이 국가의 명령이다.”
그러자 684부대를 지휘했던 국군 중위 최재현(안성기 분)이 반문한다.
“중앙정보부가 국가입니까?”
가짜 광해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까지는 오랜 역사가 필요했다. 1981년 용공조작 시국사건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의 변호를 맡은 ‘송우석’(송강호 분)이 말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영화 ‘변호인’이 지난 19일 한국영화로는 역대 9번째로 1000만명을 돌파한 후에도 꾸준히 관객을 불려가고 있다. 갑오년인 올해에는 또 어떤 작품이 관객 1000만명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10번째 주인공은 과연 어떤 영화가 될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명대사를 통해 다시 한번 지난 9편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권력이란 무엇인가” 묻는 대사다. 가짜 광해 역을 했던 천출의 광대 하선역 이병헌이 질문을 던졌고, ‘실미도’의 안성기가 반문했으며, ‘변호인’의 송강호가 답했다. ‘거대권력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개인들의 싸움과 비극’을 그린 작품이 대다수인 한국 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상징적인 대사들이다.
‘권력’과 함께 가장 두드러진 명대사는 가족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들이다. 특히 ‘아빠들’의 대사가 많다.
‘괴물’에서 배우 변희봉은 손녀가 한강 돌연변이 괴물에 잡혀가 실종되고, 나라에 의해 급히 생사확인불명 희생자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자 이렇게 말한다.
“현서야, 너 때문에 우리 다 모였다.”
변희봉은 송강호의 아버지역할이었고, 송강호는 고아성(현서 역)의 아빠를 연기했다. 극중 송강호는 딸이 국가에 의해 ‘사망자’로 분류되자, 이렇게 말한다.
“근데, 사망…, 사망자인데요…, 사망은 안 했어요.”
가족에게 변고가 생겨서야 다 모일 수 있고, 국가는 국민의 생사 확인이나 구조에는 관심이 없거나 무능한 현실의 아이러니가 변희봉과 송강호의 대사에 함축돼 있다.
‘해운대’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도 역시 아빠의 대사였다. 극중 박중훈의 대사.
“내가 니 아빠다. ”
‘괴물’에서나 ‘해운대’에서나 재난은 아빠의 자리를 다시 확인시킨다. 역시 아이러니하다.
‘7번방의 선물’에서 아빠의 말, 류승룡의 한마디는 객석을 울렸다.
“아빠 딸로 태어나서 고맙습니다. ”
한강에서 괴물이 나타나 소녀를 잡아갔고, 쓰나미가 부산 해운대를 덮쳐 사람들을 휩쓸어갔다. 딸에게 단지 가방하나 사주고 싶었을 뿐인 아빠는 어이없는 사건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다. 영화 속에서 “모두 다 꿈이었으면” 하는 비극이지만, 일어나지 않았어야 될 역사 속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불행은 한국전쟁이었다. 역사의 비극은 형제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게 했고, 단란하게 살던 가족을 헤어지게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원빈이 말했다.
“형,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따 눈을 뜨면 우리집 안방이고…. 난 아침을 먹으면서 형한테 이야기할꺼야, 정말 진짜같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비극을 다루고, 거대권력과 사회적 약자인 개인의 희생과 싸움을 그리고, 가족을 이야기하는 한국영화의 역대 천만흥행작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은 역시 ‘도둑들’이다. 순전히 영화 장르의 쾌감을 목적으로 한 오락영화다. 대사도 튄다. 극중 ‘마카오 박’이라 불리는 ‘대도’ 김윤석이 내로라 하는 한국의 도둑들을 모아놓고 한마디 한다.
“도둑놈이 도적질하는데, 뭐가 잘못됐냐?” “기적이 우리의 전공입니다. ”
결국, 우리 한국영화는 권력이 무엇이냐고 묻고, 나라와 개인이 있어야 될 자리를 물으며, 가족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왕의 남자’에서의 한 마디 대사는 의미가 깊고 시적이며 풍부하다.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 아니지 너 여기 있고 나 거기 있지?”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