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이어 ‘파파로티’서도 주연 한석규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20대에 시작할 때부터 위기와 내리막길은 올 것이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니까. 선배들도 겪었고, 후배들도 겪을 일이죠.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요? 저는 늘 슬럼프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산에서 득도하고 막 내려온 선사와의 선문답같다. 강태공이 찌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듯, 허공 어디쯤엔가 떠다니는 말을 물고기 낚듯 건져올려 상대 앞에 풀어놓듯 대화를 해나간다. 맡 끝에는 ‘허허’ ‘껄껄’ 사람좋은 웃음이 따라붙는다. 이런 사람이 “아이, ××놈들아, 잘 하자”라고 하면 아닌게 아니라 불쾌함보다 웃음이 앞설 것이다. 영화배우 한석규(49·사진)는 종종 그런 식으로 안 쓰던 욕을 써서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한다. “배우란 어차피 부침이 많은 직업, 한국영화의 최고 흥행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는 위기감이 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내 그렇게 될 줄 진작 알았다”는 대답으로 돌려준다. “그래도 정작 당하고 나니 힘들기는 했었는데, 버티게 한 힘은 인내심”이라며 “내 연기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늘 슬럼프이고, 늘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한 단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아주 복잡다단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꿈이에요. 예전에는 ‘리어왕’이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알 파치노가 셰익스피어 광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영조’ 입니다. 리어왕은 비교도 되지 않아요. 15년후쯤에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베를린’에 이어 ‘파파로티’ 개봉(14일)을 앞두고 있는 한석규를 6일 서울 광화문 한 호텔에서 만났다. ‘파파로티’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깡패 청년(이제훈 분)과 깡패를 성악가로 만든 스승의 드라마를 담았다. 여기서 한석규는 한때 유망한 성악가였지만 성대 부상으로 꿈을 포기하고 소도시 예술고교의 음악교사역을 맡았다. 되는 대로 살아가는, 껄렁껄렁하고 다소 냉소적이며,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억지로 떠맡게 된 깡패 청년에게서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제자를 통해서 실현하려고 한다.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던 앙숙같았던 사제가 서로의 마음 속 깊이 감춰두었던 오랜 상처와 꿈을 마주하게 되면서 엮어가는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EBS를 자주 보는 편인데, 가끔 청소년들이 대담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 친구들도 다 알아요. 자신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세상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까. 저 친구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가슴이 답답하죠. 제 마음 같아선 온 국민의 역량을 청소년과 교육 문제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신 “내가 또 나 혼자 생각에만 빠졌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웃지만 맏이 14살부터 막내 7살까지 네 자녀를 둔 아빠답고, 영화 속 스승이자, 문득 ‘낚시나 가자’거나 “너는 왜 연기를 하니”라고 물으며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선배답다. 말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잘 해야 되는데, ‘파파로티’가 그들(청소년들)에게 위로나 될까요?”라고 물었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