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전설의 주먹’에는 자사의 임원을 ‘야구빳다’로 폭행하는 재벌회장, 친구를 집단으로 괴롭혀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아무 죄책감을 갖지 않는 아이들, 불법 인터넷 도박을 새로운 돈벌이 삼은 조폭, 처자식을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 등 2013년 한국 사회의 음울하고 안타까운 풍경이 그려진다. 강우석 감독은 “신문 뉴스를 통해 다 접했던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그는 늘 “신문의 사회면이야말로 가장 좋은 이야기의 보고”라며 데뷔 이후 꼬박꼬박 ‘스크랩’을 해왔다. 그래서 그의 19편의 작품들은 당대 한국 사회의 ‘축도’다. 그는 늘 날선 눈으로 사회를 읽었고, 따뜻한 가슴으로 대중을 위로했다.
강우석 감독이 대학(성대 영문학)을 중퇴하고, 영화계에 들어서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시리즈의 조감독으로 일할 무렵인 1980년대 중반엔 농촌총각들의 구혼난이 사회문제였다. “보쌈이라도 해오고 싶다”는 농촌총각들의 하소연이 신문지상을 장식하는가하면, 도ㆍ시ㆍ군과 다양한 사회단체가 나서서 ‘농촌총각-도시처녀 짝짓기’ 행사를 마련할 정도였다. 강 감독의 첫 작품은 당시 청춘스타로 주가를 올리던 박중훈과 최수지를 기용한 ‘달콤한 신부들’로 서울의 한 사회단체 주관으로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상경한 농촌총각의 결혼도전기를 다룬 코미디였다. 80년대말엔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학생들이 잇따라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지고 전깃줄로 목매달고 전동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사회민주화바람을 타고 전교조가 결성돼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때였다. 대단한 선풍을 불러일으키며 강우석이라는 이름을 비로소 새겨나가기 시작한 2번째 작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여러모로 한국영화사에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준 작품이었다. “입시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호평을 받으며 제목을 유행어로 회자시킨 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의 직배가 허용되고, 그 반대급부로 영화사 설립 및 영화 소재의 자유화가 이뤄졌던 당시 문화계에서 젊은 30대 감독들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린 계기였다. 사회의 비극을 코미디로 껴안는 강우석의 독보적인 재능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도 이 작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의 냉대를 받는 주인공을 통해 청년실업의 문제를 다룬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폭력ㆍ약물ㆍ섹스로 이지러진 청소년문제를 소재로 한 ‘열 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그의 작품이력으로는 이례적인 불치병 멜로 드라마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를 거쳐 강우석은 6번째 작품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정치스릴러에 대한 야심을 보여준다. 대통령선거를 놓고 공권력과 금권력의 타락상을 보여준 이 작품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1991년 “대종상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반사회적인 영화’라며 수상에서 제외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출품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와 함께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7번째 작품 ‘미스터 맘마’ 이후 강우석 감독은 본령인 코미디영화에서 드디어 황금기를 열어젖힌다. 8번째 작품인 1993년작 ‘투캅스’는 “경찰비리를 최초로 다룬 한국 코미디영화” “사회파 코미디” “흥행의 귀재”라는 뜨거운 반응 속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해외에도 소개돼 한국 대중영화의 국제무대 진출을 타진한 선구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미국 연예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는 1994년 “대사와 액션을 단순화면서도 치밀하게 균형을 맞춰 창조적인 비주얼 개그를 만들었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결혼과 부부성을 사회의 변화와 연관시키려는 노력은 ‘당신과 아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며 집나간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기르고 집안일을 하는 남자이야기 ‘미스터 맘마’와 권태기에 이른 두 중산층 부부의 애증을 그린 ‘마누라죽이기’를 거쳐 업무스트레스로 ‘고개숙인 남편’이 된 남자의 아내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다는 ‘생과부위자료청구소송’으로 이어졌다. ‘투캅스2’까지 이어지며 흥행사를 써내려간 강우석의 코미디는 1990년대 외화 직배와 삼성, 대우 등 대기업진출로 자본의 전쟁터가 됐던 충무로에서 한국영화와 감독ㆍ프로듀서의 ‘제작 주권’을 방어하는 버팀목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 강철중을 주인공으로 한 ‘공공의 적’ 시리즈와 1000만 영화 ‘실미도’로 여전히 당대 최고의 흥행파워이자 캐릭터의 창조자임을 보여줬다. 이들 작품과 함께 ‘이끼’를 거쳐 ‘전설의 주먹’까지 그는 국가ㆍ권력ㆍ집단의 폭력과 이로 인해 떠밀려나고 희생당한 개인 혹은 그들의 방어적 폭력이라는 테마를 중심에 놓으며 한국 사회를 반성하고 대중들을 위로한다. 민족주의에 다소 안일하게 기댄 ‘한반도’는 ‘실미도’의 성공에 지나치게 고무돼 나온 ‘패착’이었고 ‘글러브’는 자기 위안의 성격이 짙은 소품같은 영화로 적어도 관객수에선 실패한 기획이 됐지만, 승부사라는 별명답게 강우석은 ‘전설의 주먹’에서 전작의 패인을 명쾌하게 넘어서며 2013년의 한국 관객을 향해 다시 한번 초대장을 내밀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