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는 가장 절절하게 모성애를 그려내는 여배우가 아닌가 싶다. ‘오로라 공주’에서 그의 안타까운 모성 연기를 봤던 이들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멜로, 드라마에서도 빛을 발하는 연기력을 지닌 그이지만 유독 모성 연기를 가장 완벽히 해내는 듯하다.

그런 그가 이번 ‘몽타주’에서 또 한번 아이를 잃고 뼈저린 한을 품고 살아가는 엄마로 분했다. 딸을 잃고 울부짖는 절규, 치밀하게 복수를 다짐하는 하경의 복합적인 감정은 완벽히 소화했다. 소름 끼치도록 말이다.

시사회 후 쏟아지는 연기 호평에 대해 그는 “그저 쑥스러울 뿐이다”라며 환히 웃었다.

“역할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제가 지금 엄마는 아니지만, 가늠할 수는 있더라고요. 하경이 어떤 감정을 지녔는지 말이에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다른 감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굳이 제가 지금 솔로여도 하경 역에는 완벽히 공감할 수 있었죠.”

하경 역에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꾸민 치밀한 복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치밀한 복수죠.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공소시효가 만료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굉장히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을 것 같아요. 자나 깨나 범인을 잡고 싶은 생각이었겠죠. 저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특히 극 후반부 엄정화가 선보이는 오열 연기는 하경의 감정이 극화된 장면이다. 극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다.

“굉장히 참담한 감정을 그려내려고 노력했죠. 계속 그 장면을 떠올렸어요. 정말 감정이 많이 소모됐죠. 감독님이 원하셨던 감정은 심하게 오열하는 거였는데, 그 감정을 생각하기 참 어려웠어요.”

하경은 굉장히 능동적인 인물이다. 뭐든지 혼자 힘으로 해냈다. 하지만 엄정화는 하경처럼 능동적이지 못하단다. 그는 “일을 할 때 빼고는 굉장히 수동적이다. 하물며 친구들 모임이나 약속도 능동적으로 잡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수동적인 성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린이들을 돕는 선행을 펼치고 있다. 그는 “발 벗고 나서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로라 공주’의 순정과 하경의 캐릭터는 모성애를 지닌 인물. 캐릭터 고착화로 인한 우려가 컸기에 몇 번이나 출연을 고사했다고.

“사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두려움이 컸죠. 몇 번을 못하겠다고 하기도 했어요. 캐릭터의 중복되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죠.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용기를 냈죠. 감독님의 설득도 컸어요. ‘오로라 공주’와는 절대 다르게 표현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몽타주’는 ‘도가니’, ‘그 놈 목소리’, ‘살인의 추억’ 등과는 다르다. 통쾌한 복수가 있고, ‘악인 타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반전이 있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처벌을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통쾌한 반전이 있잖아요. 통쾌하다고 표현해도 모자랄 정도로 느낌이 셌어요. 세상에 악인은 참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다 저렇다 악행을 저질러야 할 사연이 있다 해도 그걸 가장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잖아요.”

영화의 분위기는 무겁지만, 실제 촬영장은 늘 화기애애했다.

“무게감 있는 영화가 화기애애하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죠. 촬영 현장은 굉장히 재밌었어요. 촬영을 마치면 자주 술을 마시곤 했죠. 감독님, 조명 감독님, 촬영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 김상경 씨까지 죽이 잘 맞더라고요.(웃음)”

1992년 데뷔해 가수와 연기자로 활동한지 어엿 20년이 훌쩍 넘었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고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엄정화는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후배들이 좋아하는 선배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죠. 한 편으로는 부담도 되고요. 특히 솔로 여가수들이 얼마나 외로울지는 짐작이 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흔들리지 말고 항상 힘내서, 멋지게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느긋이 일어나던 엄정화에게 새 앨범 발매시기를 물으니 “언제가 될지 몰라도 꼭 앨범을 낼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가수 겸 배우. 결코 쉽지 않은 두 분야를 완벽히 아우르는 엄정화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