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배우 유연석에게는 ‘악역’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나쁜 선배 재욱 역으로 ‘국민 첫사랑’이라 불리는 수지에게 못된(?) 짓을 했으며, ‘늑대소년’에서는 ‘국민 여동생’ 박보영을 못살게 구는 등 남성 팬들의 원성들 들어야만 했다.
그가 ‘구가의 서’에 참여할 때도 이러한 부분을 걱정했다. 친구를 배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시 한 번 수지와 호흡을 맞추며 그를 연모하는 태서라는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도 잠시, 유연석은 ‘구가의 서’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인 태서를 만나 변화 무쌍한 매력을 선보였다.
‘구가의 서’가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은 다음날인 6월 26일 만난 유연석은 그간의 촬영으로 지칠 법도 하건만 오히려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태서를 매력적으로 느꼈던 건 바로 입체적인 캐릭터 때문이었어요. 배신하는 부분에서 우려하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한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뜻 응하게 된 거죠. 시청률도 잘 나오고 끝났던 작품이 어찌 보면 처음이네요. 기분 좋은 한편 섭섭하기도 하네요. 사극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이 정도로만 할 수 있으면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촬영장에는 이승기를 비롯해, 수지, 이유비, 성준 등 또래의 연기자들이 많았다.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즐거운 촬영장 분위기로 이를 극복했다.
“다들 체력적으로도 피곤할 수 있는데, 서로 장난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분위기가 항상 밝았어요. 서로 잘 어울렸기에 비하인드 컷도 많이 나오고 호흡에 있어서도 훨씬 자연스러울 수 있었죠. 다른 촬영장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다면 ‘구가의 서’의 박태서를 연기한 자신에게는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까.
“한 89점 되지 않을까요? 90점부터 A로 놓고 본다면 B+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후반부에 가서 백년객관 남매의 마무리가 좀 아쉽긴 했지만, 중반부까지는 감정선을 잘 가지고 갔던 것 같아요. 결말에서는 이름 석 자만 나왔지만, 제 나름대로는 신선했어요. 다른 배우들도 재미있게 보고 만족했어요.”
극중 태서의 질투와 분노는 강치(이승기 분)에 못지않았다. 특히 초반 고문 장면에서 적지 않은 고생도 했다.
“여울이 태서의 정혼자라는 소리를 듣고 괜히 또 ‘사랑의 방해꾼’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어요. ‘건축학 개론’에 이어 다시 한 번 ‘수지의 사랑을 방해하나’라고 걱정이 됐죠. 다행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네요.(웃음) 극 초반에는 긴장도 많이 했었고 상황 자체도 힘들었어요. 집안이 몰락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터전이었던 객관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기까지 했잖아요. 육체적으로는 피곤했지만 촬영할 때 희열은 있었어요. 고문 신에 모든 체력과 정신을 다 쏟아 부었다가 빈혈처럼 정신이 흐려지기도 했어요. 보시는 분들이 태서의 절실한 마음이 보였다는 말에 힘을 얻었죠.”
태서에게는 소중한 두 여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정혼자이자 연모의 대상인 여울과 자신이 지켜야하는 하나 뿐인 혈육 청조(이유비 분)였다. 두 사람에게 느끼는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수지는 ‘건축학 개론’ 때도 느꼈던 건데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요. 밤샘 촬영에도 꺄르르 웃는 모습을 보면 스태프들도 피로가 풀릴 정도였으니까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일취월장한 배우는 수지가 아닐까 새요. 처음 리딩 할 때도 이정도 까지 될까 싶을 정도였는데, 마지막에는 정말 잘 했어요. 청조 같은 경우에는 예기가 됐을 때 눈빛, 조관웅과 대치 상황에서의 연기 등 극이 흘러갈수록 연기의 깊이가 좋아지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친오빠처럼 많이 따르기도 했고요. 정말 ‘이 친구를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죠.”
‘구가의 서’는 신우철 감독과 강은경 작가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었다. 강은경 작가의 필력과 신우철 감독의 연출력은 작품의 인기에 가속도를 더했다.
“신우철 감독님은 다른 선생님들이 깔끔하다고 칭찬하실 정도로 연출력이 좋으신 것 같아요. 전체적인 부분을 끌어가는 카리스마도 있고요. 본인의 영상적인 그림이 확실하시기 때문에 배우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었죠. 강은경 작가님은 이야기가 탄탄하면서도 대본에 힘이 있고 굉장히 디테일해요. 어떤 때는 지문이 대사보다 많을 정도로요. 세밀하게 감정선 하나까지 적어주시니까 모두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연석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꼈던 ‘구가의 서’를 뒤로 하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하게 된다. 전작의 인기가 있다 보니 느끼는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부담보다는 기대가 더 커요. 감독님이랑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 이번에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신뢰가 들었었죠. 사실 캐스팅을 확정 지은 것도 시놉시스, 대본 하나 받지 않은 상태였어요. 1994년에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배우의 꿈을 가졌어요. 학예회에서 연극을 한 후에 박수를 받았는데, 그때 ‘나 이거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촬영 하면서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숨 가쁘게 다음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낼 유연석. 그는 그동안 ‘구가의 서’를 사랑해준 시청자들과 앞으로 선보이게 될 ‘응답하라 1994’를 시청해줄 팬들에게 끝인사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번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요. 다들 기쁜 마음으로 종방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셨던 것 때문이에요. 다음 작품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데,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할 테니 본방 사수 부탁드릴게요.(웃음)”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당시 만났던 유연석보다 ‘구가의 서’가 끝난 후 만난 그의 모습은 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본인은 느끼고 있을까?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그 사람이 가장 빛나 보인다는 것을.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