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1689년 겨울, 황해도 해주에 사는 김순종(金順宗)은 자기 아버지의 6대 외조부의 노비 자손들을 남원에 사는 경주김씨 김이경(金履慶)이 함부로 소유했으니 이를 되돌려 달라는 소송을 경기도 삭녕군(지금의 강원도 철원)에 제기한다. 이후 1년간의 치열한 소송 다툼은 1690년 12월 피고 김이경이 삭녕군으로부터 공식 승소 판결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이 국가문헌 확충사업의 일환으로 최근에 구입한 경주김씨 가문의 노비소송문서를 공개했다.

10m에 달하는 두루마리 종이 위에 빽빽하게 담긴 소송 기록은 현재 알려진 노비 소송 문서 중에서도 보기 드문 형태의 희귀 고문서로 17세기 노비 소유권을 두고 벌어진 상황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이와함께 17세기 초반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원 거주 경주김씨 양반 가문의 재산상속문서도 공개했다. 삼조판서(三曹判書)를 지낸 김인손(金麟孫, 1479~1552) 사망 이후 그의 자녀 1남 3녀가 모여서 부친의 노비를 나누어 가지면서 작성한 문서로,서울을 비롯,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 등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400여 명의 노비 명단이 수록돼 있다.

조선전기에는 재산이 많은 사족의 경우 노비들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분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족의 관리 능력 부족 등 여러 이유로 노비들이 전국 각지로 도망을 가게 된다. 경주김씨 가문의 경우도 재산상속문서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찾아내지 못한 노비 400여 명을 기록해 둠으로써 향후 노비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증거를 남기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말부터 남원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조선 중기 이후에는 대표적인 양반 가문의 하나로 성장한 경주 김씨 가문의 이번 문서는 조선시대 경제사회구조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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