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서부에 있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는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숲 때문에 한낮에도 어두워 로마 시대부터 ‘검은 숲’이라 불렸다. 이곳은 오늘날 일광욕과 여름휴가지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전쟁터로 유명했다. 기원후 9년 로마 집정관 바루스가 이끌던 3개 군단은 어두운 숲에 유인돼 게르만 군대에 거의 전멸당한, 아픈 상처도 여기에 새겨져 있다.
슈바르츠발트의 동쪽 끝 라인 강이 만든 계곡에서 소도시 튀틀링겐을 만나게 된다. 의료기기산업의 총본산인 튀틀링겐이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1643년 신성로마제국에 도전한 프랑스 군대는 이곳 튀틀링겐에서 전쟁을 치렀고, 양측에서 수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아주 작은 마을이었던 이곳에 임시 병동이 들어서게 되면서 마을이 커졌다.
1815년 빈 회의에서 열강들은 독일 지역을 39개의 연방(Bund)으로 나눠 힘을 기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1816년 산업진흥책을 만들어 수입 기계의 모방 제작, 청년 기술자 양성 등 영국을 상대로 한 추격형 경제 발전 모델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튀틀링겐 지역에서는 인근에서 생산되는 철로 외과용 수술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이 많아 임시 병동이 있던 지역적 특성에 맞게 산업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튀틀링겐이 의료기기의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의료 밸리’가 된 계기는 작은 창조적인 발상에서 찾을 수 있다. 1867년 프랑스에서 금형 작업을 배워온 청년 창업가 에터(G. Jetter)가 당시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수술용 가위와 칼, 핀셋 등의 크기를 세분하고 표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1881년 복부를 절개하는 개복 수술법이 독일에서 처음 개발되면서 외과 수술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 계기로 튀틀링겐에서 만든 표준화된 의료기기는 규격과 용도, 품질에서 세계적으로 압도적 지위를 굳히게 됐다.
현재 튀틀링겐은 인구 3만명 정도의 소도시지만 의료기기 관련 기업은 300개가 넘는다. 의료기기산업 종사자는 주민의 25%에 달하고, 도시 세입의 절반 이상은 여기서 나오며, 전국 평균보다 20% 이상 높은 소득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인구도 1만명을 넘을 정도로 활기찬 도시다.
하지만 튀틀링겐에도 위기는 있었다. 1980년대부터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저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개도국의 의료기기 생산 비중이 늘어나게 됐고, 140년 전통의 대표 업체인 애스클랩(Aesculap) 등도 위기를 맞았었다. 그들은 저가 공세에 따른 어려운 상황에서도 벤처투자를 늘리고 임플란트 등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창조경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미덕은 동반 성장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튀틀링겐에는 마르틴(Martin)과 메디콘(Medicon)이라는 협동단체가 있고, 700여개의 회원이 협력해 2만여가지 제품을 공동으로 생산ㆍ수출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금속산업 전문인력 교육을 위해 전문교육기관(BBT)을 설립하고 국제비즈니스대학을 만들어 의료기구 전문가도 양성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기만이 아니라 체내 이식용 장기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오늘날 의료 밸리의 명성은 대기업과 협동조합 간의 동반 성장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임시 병동으로부터 시작된 튀틀링겐의 이러한 의료기기산업은 오늘날 창조성에 바탕을 둔 첨단 중소기업, 특화된 대학, 벤처투자가 연계돼 동반 성장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고 느리지만 꼼꼼히 제조하는 독일적 창조 정신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