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물가는 15년만에 최저라지만…설명절 앞둔 재래시장 가보니…
생선·채소 등 체감물가 껑충 작년 수준 20만원으론 엄두못내…‘가계 빠듯한데’…명절분위기 실종
“월급 빼고 모든 게 다 올랐어요. 조상님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줄일 판이니….”
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남구로시장을 찾은 조순구(51ㆍ여) 씨는 설 차례상에 올릴 생선에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이 잘사는 부자 나라들(G7) 보다 낮고, 석유를 퍼내는 나라에서 기름값이 곤두박질쳐 수입물가가 1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뉴스가 ‘거짓말’이었나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4인 가족 기준 26개 품목의 차례상 구입비용을 조사한 결과, 전통시장은 21만원, 대형유통업체는 31만원으로 작년(전통시장 20만6000원, 대형유통업체 29만5000원)에 비해 소폭 오른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발표와는 달리 실제 장을 보는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이와 사뭇 달라 보였다.
조 씨와 마찬가지로, 설 차례상 차림을 위해 재래시장을 찾은 주부들의 얼굴에는 좀처럼 웃음기가 돌지 않았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한 주부 20여명 중 상당수는 “이번 설은 상다리가 어느 때보다 가벼워질 것 같다”며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한 차례상 차리기 전략에 고심 중이었다.
이 시장에서 만난 주부 김모(57) 씨도 “지난주부터 생선 가격이 싸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직 물량이 덜 풀려 생선 값이 비싼 것 같다. 특히 조기, 병어 등이 많이 안 풀렸다”고 푸념했다.
김 씨는 이날도 빈손으로 시장을 나섰다. 그는 “올 설은 작년과 비슷하게 20만원만 갖고 준비할 생각인데 가격이 올랐으니 3마리 올릴 생선을 2마리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날 강서구의 방신재래시장. 출장뷔페업을 하는 김상녀(63) 씨는 식재료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이 시장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채소와 나물이 작년에 비해 평균적으로 500∼1000원 올랐다”고 말했다.
“표고버섯은 작년 2500원에서 4000원, 계란은 왕란의 경우 5000원에서 6500원까지 뛰었어요. 오른 물가 때문에 올해 설 차례상 예산을 30만원보다 높게 잡았어요. 작년에 비해 약 5만원 더 많은 쓰는 거에요.”
그 역시 이번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줄일 계획이다.
김 씨는 “작년에는 문어, 도미, 홍어도 샀지만 올해는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수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년에 4번 지내는 제사도 올해부터는 2번으로 합쳐 지낼 생각이다.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만 만들고 여분의 명절 음식은 만들지 않겠다는 주부들도 많았다.
정숙경(50) 씨는 “명절 때 명절 음식 먹는 것이 재미이고 풍습인데 살기 어려우니 이런 데서라도 알뜰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구로구의 한 대형마트 지하 1층 식품매장에서 만난 장경옥(60) 씨는 “오른 물가에 대처하기 위해 지인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음식을 하고 비싼 국산 조기 대신 일부러 중국산 조기를 구매한다”며 “3색 나물 중 하나인 도라지를 색깔은 같고 가격은 싼 무채로 바꿔 상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장 씨는 “고사리만 해도 국산이 중국산에 비해 2배나 비싸다. 작년에 30만원으로 설을 준비했다면, 올해는 물가가 올라 36만원은 써야 작년과 비슷한 구색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로구에 사는 주부 최모(52) 씨는 “담뱃값 올리고 연말정산 바꿔서 돈 토해내게 하고 정부가 왜 요즘 서민들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며 “먹고 살만 해야 명절 기분도 나지 요즘 같아선 분위기도 안 난다”고 푸념했다.
이지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