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유코의 단편 집 <묵시>
[북데일리] “그의 단정한 문체, 생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개인과 사회가 겪는 고통과 불행의 이면들을 적극 껴안는 포용력에 등이 곧추세워지곤 했다.“ - 소설가 신경숙의 추천사<묵시>(문학동네. 2013)는 ‘일본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쓰시마 유코의 단편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1982년부터 십 년 동안 발표한 <묵시>, <꿈의 기록>, <빛나는 물의 시대>, 세권의 소설집에서 일곱 편을 골랐다. 그 작품들은 모두 작가의 “삶에서 큰 가지가 갑자기 잘려나갔던 시기를 전후해 쓴”것 들이다.
소설가였던 그녀의 아버지 다자이 오사무는 그녀가 한 살 때 어떤 여자와 동반자살을 했고, 그녀가 사춘기 때 오빠의 죽음을 겪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들마저 호흡곤란으로 갑작스레 죽었다. 책에 수록된 각각의 단편들은 마치 연작 소설들처럼 모두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 한결같이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표제작 <묵시>에서 ‘나’는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고 있다. 어느 날 집 근처 숲에서 고양이를 여러 마리 발견하고 어떤 거래를 떠올린다. 숲속에 사는 고양이와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침묵 속 거래 묵시默市를 말이다. 즉 아이들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고양이는 꿈속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주고 있지는 않을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묵시가 조금도 신기한 일이 아니란 것을 나도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 숲 근처에 산다는 것은 그런 사람, 예를 들어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에게 얼마간 위안이 된다. 숲에 많은 것을 버렸지만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놓아준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숲의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집착하고, 그리워한다. 한편 지금도 숲에서 늘어나고 있는 동물들은 숲 밖의 인간세계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다.” (p.29)
<욕실>과 <‘신비한 소년’>은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세 남매를 키운다. 고생 끝에 새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후 오빠가 갑자기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언니는 집을 나가버린다. 이후 ‘어머니의 외로움과 고독에 휩쓸려 사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 나도 스물세 살 때 한 청년을 쫓아 집을 나온다. 하지만 나도 결국 어머니처럼 홀몸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처지가 된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와 아이들과 다 함께 살기로 계획하고 집을 새로 고치기로 마음먹을 때 아들이 사고로 죽는다.
<꿈의 기록>은 작가가 아들을 잃고 약 일 년 반 뒤에 쓴 작품이다. 시종일관 아들에 대한 꿈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자카 도프니―여름 집>에서도 꿈과 현실이 모호하지만 죽음으로 인한 아픔만은 생생하게 전해진다. 결국 <슬픔에 대하여>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묻고 또 묻는다. 과연 내가 슬퍼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날부터 나는 내 좁은 집에도 아들아이가 숨어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깨닫고 나니 조금도 뜻밖이 아니었다. 아들아이는 작디작은 알갱이 같아서 딸아이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면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었다. 화분의 흙 속, 책장의 빈틈, 찬장 서랍 안, 텔레비전 뒤, 세면대 선반, 옷장 안.(중략) 나는 지금도 여전히 슬픔을 모른다. 아이가 여기저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무어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작은 알갱이가 된 아이가 매일 내게 기쁨의 빛을 전해준다.“ (p.186, <슬픔에 대하여>중에서)
마지막 작품 <모든 죽은 이의 날>은 몇 년 후 파리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결국 어떻게 해도 죽은 아이가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어떤 추억도 연고도 없는 파리로 떠나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생활한다. ‘모든 죽은 이의 날’은 11월 2일, 가톨릭 명절인 위령의 날을 뜻한다. 성당에서 모든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날이다. 그녀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사촌 여동생과의 또 다른 만남을 통해 예기치 않은 기쁨과 감사한 마음도 느끼게 된다.
읽는 내내 끊임없이 가혹한 현실에 맞닥뜨린 그녀의 삶에 가슴 저릿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그것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그녀를 통해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녀가 조용히 손을 잡고 “괜찮다. 다 괜찮다”고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다.
“아주 큰 가지가 떨어져나갔는데도 제 삶의 시간은 계속되었습니다. 어째서 중단되지 않는가.(중략) 그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겠지요. 소설을 쓰는 일과 읽는 일 모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또 묻는 행위일 것입니다.” (p.7~p.9,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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