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지난 5월 22일 밤 9시 40분 서울 강서구 공항동의 한 원룸 화장실에서 A(45)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화장실 한 귀퉁이에 앉은채 숨져 있던 A 씨의 얼굴에는 무엇인가에 맞아 1.5cm 정도 찢어진 상처가 있었으며, 목뼈(설골)와, 갈비뼈 14대가 부러져 있었다. 타살이었다.

기자가 이 사건을 인지한 것은 지난 6월 25일. 누군가가 공항동의 한 원룸에 들어와 A 씨를 때려죽이고, 도주했다는 내용과 A 씨가 숨진 원룸의 주소지 정도만 기자가 파악하는 상황이었다. 사건의 조각을 모으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가서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기자는 주변인들로부터 기자가 알고 있는 내용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누군가가 A 씨를 때려죽이고 도주한 것이 아니라 친구집에 놀러온 A 씨가 심장 마비로 숨졌으며, 아직 그 친구는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A 씨의 친구를 만나야 했다.

집앞에서 기다리길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흙빛 얼굴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40대 남성 한명이 나타났다. 검은색 봉지를 든 채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A 씨의 친구 B(40) 씨였다.

B 씨는 "한 달전 발생한 변사사건에 대해서 아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 사건은 한 달 전에 이미 종결됐다"고 답했다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기자가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하자, 그는 신분을 밝히라고 했다. 기자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한 기자가 돌아가려 할 찰나. "잠깐만"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성이었다.

기자를 불러 세운 그 남성은 앞으로 다가와 코앞에서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번만 더 쑤시고 다니면…, 변호사를 통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취재를 잠시 멈춘 기자는 강서 경찰서로 발걸음을 돌렸다. 심장마비인지, 살인인지 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취재 내용을 경찰에 설명한 기자는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살인 사건이며, 그 사람이 40대 남성이 이번 살인 사건의 주 용의자라는 것이었다. 한 달 전에 사건이 발생했지만, 증거 수집을 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었다. 범인이 안심하게 하기 위해, 경찰은 주변인들에게 A 씨가 심장마비로로 숨졌다고 말한 상태라고 전했다. 범인을 안심시킨뒤 거짓말탐지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월 22일 밤 9시 40분께 A 씨가 숨져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은 그 집에 사는 A 씨의 친구 B씨였다. 하지만 B씨는 경찰의 임의 동행요구도 거부 한채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B 씨는 최근까지 어디로 가지도 않은 채, 자신의 집과 부모님 집을 오가며 생활했다.

목격자도 폐쇄회로(CC)TV 도 없었다. 둘은 같은 공간에 있었으며, 자고 일어나니 한사람은 죽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술에 취해 모른다며 모든 상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A 씨는 '명백한 타살'로 숨졌으며, 경찰은 범인을 잡아야 했다. 경찰은 B 씨를 주용의자로 지목,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B씨가 죽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신발을 신고 밟아 죽였으면, 족적이라도 남아 있을 터지만, 숨진 A 씨의 몸에는 어떠한 B 씨의 흔적도 없었다. 경찰의 수사는 A 씨가 제 3자에 의해 구타당해 죽었을 가능성을 제외해 나가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은 우선, 21일 오전 12시 10분께 A 씨 원룸 인근 편의점 앞 CCTV 를 통해 택시에서 내리는 A 씨와 A 씨 택시비를 대신 지불하러 마중나온 B 씨를 확인했다. 또 이날 저녁, 소주3병과 바나나우유 2개, 노가리를 사가는 B 씨의 모습도 확인했다. 경찰은 A 씨와 B 씨가 30시간 동안 같이 있었던 것으로 결론 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술을 마셨다.

경찰은 다른 곳에서 맞고 들어와 B 씨 집에서 숨졌을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 했다. 하지만 21일 B 씨 집 인근에 있는 편의점 앞 CCTV에서 찍힌 택시에서 내리던 A 씨의 얼굴은 깨끗햇다. 하지만 숨진 A 씨의 얼굴에서는 발견된 1.5cm의 찢어진 상처가 발견됐다.

소환에 불응한 채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하던 B 씨. B 씨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결정적인 계기는 망치였다. 변사체 발견 당일 현관에서 수거해온, 망치에서 A 씨와 B 씨의 DNA 가 동시에 나왔다. 폭행시 망치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집 깊숙이 있어야 할 망치가 전과 달리 현관에 나와 있었던 점, DNA 가 동시에 발견된 점에 미루어 폭행이 있기 전 둘간의 실랑이가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판단했다.

또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B 씨의 주치의와 B 씨 내연녀는 "B 씨가 술을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경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7일에는 경찰의 수사를 염두해 두고 B 씨와 그 내연녀가 주고 받은 "경찰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등의 문자도 참고가 됐다.

결국 지난달 30일 B 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이 발부 됐으며, B 씨는 결국 경찰 조사에 응해야 했다.

하지만 체포영장과, 압수수색만으로 B씨에 대한 구속수사를 할 수는 없다. B 씨가 경찰에 구속된 결정적인 계기는 30일 압수수색을 할 때 수거해온 B 씨의 청바지였다. 숨진 A 씨의 손톱에서, B 씨 청바지 성분이 발견됐다.

결국 서울 강서경찰서는 B 씨를 폭행 치사 혐의로 지난 1일 구속했다. B 씨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이다. 거짓말 탐지기도 거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와 CCTV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B 씨에 대한 수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B 씨가 범인이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