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

선망의 대상 정치인·연예인·스포츠스타 도덕적 결함·일탈에 위안 넘어 쾌감

영화 ‘톱스타’ ‘배우는 배우다’ 한낱 스캔들에 끝없는 추락의 늪으로

가십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최소한의 품격이 곧 사회의 품격

영화 ‘톱스타’와 ‘배우는 배우다’는 톱스타를 향한 욕망과 연예계의 이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최고의 스타 혹은 배우가 되고자 했던 주인공들의 신기루같이 짧았던 영광과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을 그렸다. 여기서 연예계란 부와 명예의 화려함 이면에 돈과 폭력, 섹스가 뒤엉켜 있는, 거대한 ‘가십 월드’다. ‘톱스타’와 ‘배우는 배우다’의 주인공이 겪는 추락의 원인은 흥행 실패나 연기력 부재 따위가 아니다. ‘가십’이며 ‘스캔들’이다.

가십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을 담은 조지프 앱스타인의 저서 ‘성난 초콜릿-그럴듯하면서 확인할 수 없고 매우 가혹한 가십의 문화ㆍ사회사’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가십이란 누군가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을 제삼자가 또 다른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다. 연예계가 거대한 ‘가십 월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배후에 항상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 즉 돈과 폭력과 섹스에 대한 ‘비밀’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현재가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라도 반영된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두 편의 영화에서 스타는 돈과 폭력, 섹스의 ‘거래’로서 탄생하고 존속되며 사멸한다.

정치인이나 연예ㆍ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사를 둘러싼 가십은 ‘공적인 가십’이라는 의미에서 한층 고전적인 유형이다. ‘성난 초콜릿’의 저자는 동시대의 유명인사와 관련된 가십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상당부분은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즉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고 느끼는 심술궂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빼어난 외모나 연기력, 가창력 등 재능으로 엄청난 돈과 명성을 얻은 사람도 부부 불화나 힘겨운 다이어트, 정신적 문제 같은 ‘나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갖고 있거나, 심지어는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나 일탈적 행위를 감추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위안이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유명인사에 대한 가십을 공유하면서 부와 권력, 재능을 소유하지 못한 자신의 불운을 상쇄시키는 ‘도덕적 우월함’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 ‘톱스타’와 ‘배우는 배우다’는 톱스타를 향한 욕망과 연예계의 이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톱스타’와 ‘배우는 배우다’는 톱스타를 향한 욕망과 연예계의 이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가십 월드’가 됐다. 인터넷 때문이다. ‘성난 초콜릿’에 따르면 가십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고급 상류층 가십 전문지인 ‘배니티 페어’를 거쳐 ‘뉴요커’ ‘뉴스위크’ 등의 편집장을 지냈던 저널리스트 티나 브라운은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앱스타인은 “현재 모든 가십은 인터넷에 있다”고 했으며, ‘뉴욕타임스’에서 알렉스 윌리엄스는 “기자와 블로거, 가십과 뉴스를 구분하기가 모호해졌다”고 썼다.

‘전 세계 24억명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카피를 내세우고 한국 개봉(11월 7일) 예정인 영화 ‘디스커넥트’(감독 헨리 알렉스 루빈)는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가십 월드’의 비극을 그려낸 수작이다. 어린 아들을 잃고 부부관계도 소원해진 여인은 지독한 외로움과 상실감을 벗어나기 위해 채팅을 하다가 모든 신용정보를 해킹당해 재산을 잃게 된다. 지역 방송국의 한 여기자는 ‘미성년 성인 채팅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특종을 낚지만, FBI와 불법조직 사이에서 파국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뿐만 아니다. 학교야말로 SNS가 가장 위험한 지대일 수 있다. 십대 악동 소년 두 명이 한 친구를 골려먹기 위해 미모의 소녀로 위장해 접속과 채팅을 시도하고, 결국 여기에 농락당한 친구는 자신의 치부가 전교생에게 공개돼 모욕을 당하게 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영화 ‘소녀’(11월 7일 개봉)는 가십이 지배하는 사회를 대면접촉이 익숙한 마을 공동체로 축약시켜놓은 작품이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 배경으로, 여기선 SNS를 대신하는 것은 ‘입소문’이지만, 이를 통해 그리는 것은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다. 자신의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소문 탓에 친구가 자살했다는 상처를 가진 고교생이 한 시골마을로 전학을 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소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가혹한 소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또다시 소녀를 둘러싸고 괴이한 이야기가 마을에 퍼지자, 소년이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 역시 작은 마을에 퍼진 소문을 소재로 해서 ‘말의 폭력’을 그린 영화였다.

잡지 ‘코스모폴리탄’과 ‘글래머’ ‘US 위클리 등 가십성 잡지를 편집해왔던 보니 풀러는 “나는 우리 모두에게 가십 유전자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성난 초콜릿’의 저자는 “불안이나 위기가 만연한 시대에는 소문도 가십도 무성해진다”며 “가십은 사라지지 않고 늘어날 것이며, 우리는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가십이 스타를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가십 월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한 건, 가십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유통되는 가십의 품격이야말로 그 사회의 품격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리라는 사실 아닐까?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