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집집마다 차를 갖는 것은 사치다. 정부가 유류세를 올려 국민과 기업들의 석유 과소비를 억제할 계획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지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논리였다. 당시 정부는 치솟는 국제유가에 발맞춰 유류세를 인상해 석유 소비 억제를 추진해왔다. 당시 전기료는 저렴하다 못해 헐값이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산업계의 주 소비 에너지원을 이때 석유에서 전기로 바꾸기를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 정부 입장이 180도 변했다. 전기요금은 오르고 유류세는 깎였다. 이제 전기를 아끼고 석유를 쓰란다. 참여정부 때 잠시 삐끗했던 발전소 건설 플랜이 결국 전력 수급의 불균형을 초래했고 허술한 수요 예측까지 더한 결과, 초유의 전력난을 겪으면서 고심 끝에 내놓은 정책이다.
정말 어이가 없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정부만 믿었던 국민과 기업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가정에서조차 기름보일러를 이미 전기보일러와 전기장판으로 바꿔놨더니 또다시 기름보일러로 바꾸라면 큰 부담인데, 산업 현장은 그 부담이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이러다 최근 들어 잠잠한 국제유가가 다시 치솟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가격 구조 개선은 환경적 관점에서도 낙제점에 가깝다. 지금 전 세계는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친환경 에너지원에 대한 세제 혜택 등에 집중하고 있다. 자국 기업들의 기반 에너지를 친환경으로 변모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당장의 전력난을 막아보고자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유 사용을 권장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 과거 정부만 믿고 산업체를 꾸려놓은 기업체나 국민은 졸지에 전기 과소비에 빠진 ‘몰상식한 기업’이 됐고, 이제 요금폭탄 고지서만 기다리고 있다. 한 기업체 고위 관계자는 “하긴 20년, 30년을 내다보고 수립한다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도 정권이 바뀌면서 5년 만에 대부분 갈아엎어졌다”며 “이제는 정부 정책에 장기적 관점의 믿음을 갖기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윤정식 (경제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