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행켈만 한독상의 대표 인터뷰

“중처법에 외국인 CEO 한국 부임 꺼려”

양국 교역규모 작년 역대 최대 기록

獨 정부 고위인사 사절단 연내 방한

“외국인 한국 부임 꺼릴 정도…CEO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법은 극단적” [비즈360]
마틴 행켈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한독상공회의소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한국 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독상공회의소 제공]

[헤럴드경제=김현일·정태일 기자] 마틴 행켈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CEO가 하지 않은 행위까지 범죄화(criminalization)하는 것”이라며 “이 법안 때문에 외국 CEO들은 한국에서 대표직을 맡아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틴 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한독상공회의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중대재해처벌법이 한국 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CEO가 나쁜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이 아닌데도 단지 그 회사의 CEO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간다는 것은 매우 극단적 규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물론 회사는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부주의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한 경우 민사상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형사상 제재까지 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마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외국 기업들 사이에서는 CEO가 한국 법인에 부임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독일 변호사 출신인 그는 정권에 따라 법 적용이 자주 뒤바뀌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마틴 대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같은 법안이라 하더라도 전과 다르게 적용을 하다 보니 독일 기업들이 혼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독상의가 최근 실시한 ‘독일 기업의 한국 비즈니스 환경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한국의 입법환경 및 규정에 대해 38%가 ‘불만족’, 13%가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했다. 국내 법·제도에 대한 불만이 51%에 달하는 셈이다. ‘만족’ 또는 ‘매우 만족’은 6%에 불과했다.

마틴 대표는 “법안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지 어려움도 호소한다”며 “기업들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틴 대표는 지난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한독상의 대표에 취임했다. 그 해 ‘한독상의 40주년’에 이어 지난해 ‘한독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굵직한 행사들을 잇달아 치렀다. 그 사이 한국과 독일의 교역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며 서로에게 더욱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한국과 독일의 무역 규모는 339억 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한-유럽연합(EU) 무역량 중 독일 비중은 약 22%에 달한다. 마틴 대표는 양국이 모두 제조업과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점에 주목하며 경쟁은 물론 협력의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독일의 세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라며 “양국이 모두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들이기 때문에 경제와 관련된 규제를 좀 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개선한다면 더 많은 협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일환으로 마틴 대표는 지난 2010년 10월 체결된 한-EU FTA를 개정한 ‘한-EU FTA 2.0’을 줄곧 주장해왔다. 협정을 체결한 지 약 14년이 되는 만큼 국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양국이 상호 혜택을 극대화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술과 사업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한국 부임 꺼릴 정도…CEO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법은 극단적” [비즈360]
마틴 행켈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한독상공회의소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한국 시장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독상공회의소 제공]

현재 한국과 독일은 산업 분야에서의 탈탄소화, 재생에너지 활용 등을 주제로 협력하고 있다. ‘한-독 에너지 파트너십’의 국내 공식 사무국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한독상의는 올해 산업계의 탄소배출 저감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로 콘퍼런스와 세미나도 개최할 계획이다.

마틴 대표는 에너지 외에도 양국이 강점을 지닌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e-모빌리티(전기차, 전기트럭, 전기버스, 전기 오토바이 등)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한독상의가 최근 실시한 ‘유럽 기업의 한국 비즈니스 환경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설문에 응답한 독일 기업 중 55%가 “한국 시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27%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셈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들 간의 합종연횡이 활발한 가운데 유럽 기업들은 다소 소외된 것 같다는 의견에 “독일을 비롯한 EU에서도 높은 관심을 갖고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은 삼성이나 SK하이닉스 같은 큰 반도체 기업만 없을 뿐 가스나 광학, 접착제 등 소재와 부품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일도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 대응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반도체 제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독일 무역투자청(GTAI)이 중심이 돼 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언론 인터뷰는 한독상의가 용산 한남동을 떠나 청와대와 경복궁이 보이는 종로로 이전한 이후 처음 이뤄졌다. 한독상의 사무실 확장이전을 기념해 독일 연방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포함된 사절단이 올해 상반기 중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마틴 대표는 이번 이전으로 독일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한국 부임 꺼릴 정도…CEO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법은 극단적” [비즈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