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간식…‘간편식’ 인기
전·잡채·차례상…판매품목 ‘진화’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명절 첫날이면 어른 5명, 아이 2명 먹을 양으로 20만~25만원어치 명절 음식을 삽니다. 재료 준비부터 스트레스여서 사서 먹는 게 시간과 에너지 면에서 이득이더라고요.”
결혼 후 명절마다 시가 근처 시장에서 음식을 구입하는 30대 직장인 이은혜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씨는 형님(손윗 동서)과 같이 장을 보는 것에 만족도가 높고, 어른들은 간편하게 준비하는 명절 식사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직접 명절 음식을 만들던 옛 추석과는 달라진 풍경입니다.
전, 잡채 등 명절 대표 음식부터 차례상 세트까지 판매하는 곳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반찬 전문점 집반찬연구소는 30만원대 차례상 세트 10종을 3년째 팔고 있습니다. 집반찬연구소는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 지역별 차례상에 따라 음식도 달리 구성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약 600세트가 팔릴 것으로 이 업체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액수로 따지면 1억8000만원어치가 넘는 규모입니다.
조리한 것보다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한지 비교해 봤습니다. 조리된 추석 표준 차례상 세트는 26일 기준 31만500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같은 날 발표한 2차 가격 조사 발표에 따르면 올해 추석 제수용품 비용은 4인 기준 평균 32만993원이었습니다. 가격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박종철 집반찬연구소 대표는 “저희는 원래 반찬 전문점이기 때문에 식자재를 미리 확보해 놓은 데다 순환을 시키기 때문에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간편함과 시간 절약을 이유로 명절 음식에 대한 수요는 실제로 늘어납니다. 온라인몰 그리팅몰을 운영하는 현대그린푸드에 따르면 ‘한우 궁중잡채’, ‘동태전’, ‘부드러운 소갈비찜’ 등 11~24일까지 판매된 명절 프로모션 기간 제품 판매 신장률은 29%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반찬 프랜차이즈점인 슈퍼키친의 경우도 명절 기간이 되면 ‘판매 톱5’ 제품의 순위가 ‘모둠전’, ‘소고기 산적구이’ 등으로 바뀐답니다. 김세진 슈퍼키친 부대표는 “전이나 잡채 등 명절 기본 제품은 추석 기간 때 20% 가까이 비중이 올라온다”고 말했습니다.
사서 먹는 건 반찬뿐만이 아닙니다. 식혜, 수정과, 간식 등도 구입해서 직접 사 먹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경남 합천에 거주하는 30대 고모 씨는 “대형마트에 가면 떡과 전은 물론 송편에 솔잎까지 넣어서 제품이 나온다”며 “추석 간식을 아이들에게 경험해 주려고 주말부터 사 뒀다”고 합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간편식 시장 규모를 지난해 기준 5조원대, 한식 반찬 시장 규모를 최소 2조원대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 전망입니다. 아파트나 동네에 있던 소규모 반찬가게를 넘어 이제는 슈퍼키친·장독대 같은 프랜차이즈 반찬가게까지 등장하면서 위생을 앞세운 새로운 비즈니스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 대체공휴일(10월 2일)을 포함해 6일간의 연휴가 예정되면서 일반 반찬 판매량이 호조라고 합니다. 해외를 가거나 오히려 명절에 귀향하지 않는 인구도 많기 때문이라는데요. 업계 관계자는 “미리 다녀오셨거나 추석에 안 모이는 집은 반찬을 쟁여두려고 많이 사고 짧게 여행을 다녀온 분은 다녀와서 먹을 게 없어 미리 구비하는 개념으로 주문이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업계는 전통적인 ‘명절 음식’에 대한 수요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다고 합니다. 반찬 비즈니스는 성장하지만 명절 음식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죠. 차례상을 간소화하거나 지내지 않는 집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올해부터 차례를 멈춘 40대 직장인 이모 씨 가족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씨는 “40년 넘게 저희 집의 명절은 장 보고, 재료 다듬고, 요리하는 시간이 사실상 대부분이었다”면서 “어머니와 아내처럼 특정인이 고생하는 구조를 멈추고 그날은 좀 더 좋은 음식을 가족끼리 먹는 쪽으로 바꾸기로 최근 결정이 났다”고 했습니다.
취재를 하는 동안 소비자와 업계 관계자로부터 명절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다수 나왔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특정 음식을 먹는 특별한 날에서 가족과 모이고 만족할 만한 식사를 하는 날로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존중과 예의도 중요하지만 현재 살아있는 가족이 힘들지 않고 명절을 잘 보내는 것에도 의미를 두는 분위기가 읽힌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