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직장인 K씨는 조만간 자신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의 슬개골과 십자인대 수술을 할 예정이다. 수술비가 300만원이나 든다고 하는데, 신용카드 장기 무이자 할부가 불가능해 부담이 크고 막막하다. 최대 무이자 할부 기간이 3개월인데, 매달 100만원씩 지불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의 무이자 할부 축소가 반 년째 이어지고 있다. 6개월, 길게는 12개월까지 가능했던 무이자 할부가 최장 3개월로 축소된 가운데 이같은 긴축은 올해 내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7개(신한·현대·삼성·KB국민·농협·하나·롯데) 전업카드사는 대부분 최대 무이자 할부기간을 대폭 축소한 뒤 다시 확대하지 않고 있다. 신한카드, 우리카드 등 일부 카드사에서만 병원비·학원비·대학등록금 등 일부 예외 품목에 5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 열어놓은 걸 제외하면, 생활밀접업종의 모든 소비에서 무이자할부기간이 3개월에 그치는 중이다.
카드사는 올해 연초부터 무이자 할부 기간을 단축하기 시작했다. 6~7개월까지 가능하던 보험사, 병원비 등에 대한 할부 혜택이 대폭 축소됐다. 앞서 KB국민카드는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산후조리원 등에도 7개월 할부를 제공했으며, 신한·현대·삼성카드 등도 자동차보혐료에 최장 6개월 이상의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장기 무이자 할부가 불가능해진 지 반 년, 문제는 카드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신용카드 사용을 나타내는 판매신용의 1분기 잔액은 114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증가했다. 판매신용은 재화 판매자나 서비스 제공자가 제공하는 신용거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신전문기관(신용카드회사·할부금융회사)과 백화점 등 판매회사가 제공한 신용을 집계한 것이다.
앞서 한은 관계자는 2분기 판매 신용 전망에 대해서도 “4월 개인 신용카드 이용액이 1분기 월평균 금액보다 조금 높다”며 “대면 활동도 늘어나는 추세라 판매 신용이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여행 및 대면활동으로 고액 지출을 하는 이들이 늘면서 2분기 소비 결과는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올해 내내 영업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장 장기 무이자 할부 등의 혜택을 재개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는 무이자할부 개월 수를 겨우 유지했지만 연초부터 축소했다”며 “여기에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시점에 일부 업종에 대해 무이자 할부 적용 개월 수를 더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항공권 등 고액 소비를 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박모씨는 “2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유럽 항공권을 끊었는데, 장기 할부가 되지 않아 결국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며 “이 외에도 가전 등 큰 돈 들어갈 일이 많은데 3개월 할부로 살 생각 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고 먹고살기 어려워진 카드사가 무이자 혜택부터 줄인 것이 사실”이라며 “좋아질 여지가 안 보인다고 판단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