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
오는 9월 17일부터 내한공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스승과 제자가 다시 만났다. 세계적인 거장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지휘자 장한나가 11년 만에 한 무대에 선다.
21일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에 따르면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장한나는 오는 9월 17일 전주를 시작으로 19일 대전, 21일 경주, 23~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2012년 성남문화재단의 앱솔루트 클래식 이후 무려 11년 만이다. 업계와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선 오랜만에 성사된 사제의 공연이라는 점에서 벌써부터 기대가 높다.
한국의 ‘첼로 신동’ 장한나와 거장 미샤 마이스키의 인연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92년. 당시 내한한 미샤 마이스키는 아홉 살이었던 장한나의 연주 영상을 보고 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마이스키는 많은 연주자들이 존경하는 음악가로 꼽는 첼리스트다. 그는 1948년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1966년 18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전설적인 ‘첼로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했다. 러시아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는 가족들이 이스라엘로 망명하자, 반체제운동에 관여했다는 누명을 쓰고 1970년 노동 수용소에 18개월간 수감됐다. 이후 2개월간 정신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큰 충격을 받았기도 했다. 마이스키는 이 시대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로스트로포비치와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를 사사한 유일한 첼리스트이기도 하다.
장한나는 자신의 삶을 바꾼 ‘하나의 사건’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스승 ‘미샤 마이스키와의 만남’을 든다. 마이스키의 편지를 계기로 만난 두 사람. 장한나는 마이스키를 만나며 음악이 무엇인지, 음악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마이스키를 사사하며 장한나는 세계 무대를 놀라게 한다. 첼로보다 작은 몸집의 소녀는 백인 남성들이 참가했던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한다. 미샤 마이스키는 장한나를 자신의 ‘유일한 제자’로 소개한다. 때문에 장한나가 첼로를 멈춘 것을 누구보다 아쉬워했지만, 그의 지휘 영상을 보고 음악을 대하는 장한나의 태도를 더 존경하게 됐다고 말한다.
마이스키는 장한나가 ‘첼로 신동’이던 시절부터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장한나가 첼리스트였을 때도, 지휘자인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 무슨 곡이든 너와 함께라면 좋다”고 말한다.
장한나가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07년부터다. 그는 “다른 악기에 비해 첼로 레퍼토리가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일찌감치 이 악기의 한계를 느껴” 지휘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실제로 첼로가 주인공인 연주곡은 약 30~40개. 그 가운데 공연을 통해 관객과 자주 호흡하는 인기 레퍼토리는 10개 정도다. 이런 이유로 장한나는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 “첼로 레퍼토리가 적어 일 년이면 인기 곡을 모두 연주하게 된다”는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데뷔 무대는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페스티벌이었다. 2007년 이 무대를 통해 포디움에 선 뒤, ‘새싹 지휘자’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성남문화재단이 기획한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을 이끌었다. 한국판 ‘엘 시스테마’ 격인 ‘앱솔루트 클래식’은 오디션을 통해 젊은 유망주들을 선발, 한 달간 함께 연습한 뒤 총 3회 공연을 열었다. 성남문화재단 관계자는 “음악가로의 미래를 꿈꾸는 유망주들과 지휘자로의 기반을 닦고 있는 장한나가 함깨 성장하며 만들어가는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지휘자가 된 장한나와 미샤 마이스키의 공연은 2012년 앱솔루트 클래식을 통해 성사됐다. 당시 마이스키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첼로 협주곡인 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를 지휘자로 성장한 제자와 함께 들려줬다.
이후 장한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쾰른 필하모닉, 비엔나 심포니, 리버풀 필하모닉, 시애틀 심포니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2017년 9월부턴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를 맡았다. 2022년 9월부턴 함부르크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클래식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 선정 ‘내일의 클래식 슈퍼스타 20인’에 뽑혔으며, 영국 클래식 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이 선정한 ‘현재 최고의 여성 지휘자 19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장한나와 마이스키는 오는 9월 내한 공연에선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과 베토벤 교향곡 5번(9월 23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9월 24일)을 연주한다. 첼로 음악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드보르자크 협주곡은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화려한 곡으로 정평이 나있다. 마이스키도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선보이게 되는 곡이다. 공연을 앞둔 장한나는 자신의 SNS를 통해 1996년 마이스키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선생님은 제 음악가 인생의 시작”이라는 글을 적었다.
크레디아는 이 공연에 대해 “ 열정적인 조련사로 유명한 장한나와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디토 오케스트라와 빚어낼 사운드를 기대해도 좋다”며 특히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자, 거장과 거장의 만남, 클래식 음악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는 역사적인 무대로 놓칠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