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회삿돈을 빼돌리고 세금 안낸 죄로 처벌받은 재벌총수들을 가석방 할 수 있다고 경제 부총리와 새누리당 대표가 잇따라 운을 뗐다. 대통령이 직접 행사하는 ‘특별 사면’ 대신 법무부 장관이 주체가 돼 법 집행을 하면 “원칙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리 기업 총수에 관용은 없다”는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시작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등 경제인 가석방 논의가 언급되면서 재벌 총수들의 경영 복귀에 관한 문제가 법무부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26일 여권의 경제인 가석방에 대해 “요건이 갖춰질 경우 누구나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 받고 형기의 3분의 1을 마친 모범 수형자를 대상으로 내리는 행정처분인 만큼 ‘기업 총수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라는 게 여권의 논리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도 기업인 가석방 결정은 법무부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원내대표는 “법무부가 결정할 사안이기 때문에 결정의 주체는 정부”라고 말했다.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가석방은 형법, 형소법 절차에 의해 법무부 장관이 판단한다. 기업인이나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형기, 복무, 복역 기간을 넘어서 형사정책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권이 경제인 ‘특별 사면’이 아닌 ‘가석방’ 군불을 때는 건 여론의 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별 사면은 행사 주체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면이 이뤄질 경우 박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거듭 천명한 ‘기업총수 무관용’ 원칙이 깨졌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면권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사면법에 따라 구성되는 위원회 논의를 거쳐 사면 대상자가 정해진다.

반면 가석방은 헌법이 아닌 형법을 근거로 법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매달 하순 가석방 심사를 하고 대상 수형자를 정한다. 여권이 “가석방 대상자에서 기업 총수를 논외시키는 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법무부에서도 “가석방 원칙이 깨진 게 없다”고 설명하는 근거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기업인 중 가석방 요건을 충족하는 대상은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월 횡령 혐의로 기소돼 올해 2월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이달 31일이면 수감 700일째가 된다. 동생인 최 부회장도 징역 3년 6월이 확정돼 수감 중이며 이미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마쳤다. 2012년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구속된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도 징역 4년을 확정 받고 789일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원칙을 져 버린 게 아니라는 게 여권의 논리지만, 다분히 업계 측이 정치권에 희망사항을 밀어 넣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