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변별력 높이려 과목당 1~3문제
역설적이게 수능 만점 위한 필수 전략 돼
킬러문항이 돈벌이 돼…결국 사교육비 증가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밀도가 균질하거나 구 대칭인 구를 구성하는 부피 요소들이 P를 당기는 만유인력들의 총합은, 그 구와 동일한 질량을 갖는 질점이 그 구의 중심 O에서 P를 당기는 만유인력과 같다.”
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출제된 국어 영역 31번 문항의 마지막 문장이다. 과학과 철학이 융합된 지문을 읽고 만유인력에 대한 별도 제시문을 해석해야 하는 문항이다. 수능 직후, 수험생들 사이에선 “이게 국어 지문이냐, 물리 지문이냐”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현직 국어 교사들조차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논란이 나오면서 결국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해당 문항 오답률은 81.7%에 달했다.
위 문항은 수능 ‘킬러 문항’의 대표적 사례다. 킬러 문항은 이 같은 초고난도 문항을 뜻한다. 공교육 과정을 밟는 것만으론 사실상 정답을 맞추기 어려운 킬러 문항은 ‘사교육’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꼽혔다. 이에 정부가 ‘킬러 문항 배제’라는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교육 현장의 첫 반응은 환영과 비관이 혼재한다. 킬러 문항이 지닌 양날의 검 같은 성질 때문이다.
킬러 문항은 수험생들 사이 변별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통상 과목당 1문제에서 3문제까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수학 ‘30번’이 악명이 높다. 2018년 수능 수학 가형 30번 정답률은 2%에 그쳤다. 미분법을 활용한 그래프를 추론하는 문항으로, 사실상 고교 과정을 벗어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킬러 문항은 역설적으로 ‘수능 만점’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됐다. 동시에 학원가에서 킬러 문항은 ‘돈벌이’ 수단이 됐다. 수능에 나올 킬러 문항을 예측해주거나 역대 킬러 문항을 해설해주는 고액 학원이 성행한 것이다. 강남가 한 학원에선 킬러 문항을 포함한 문제집을 별도로 제작해 100만원에 판매한 사례까지 나왔다.
킬러 문항은 역설적으로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앞선 정부 대책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킬러 문항이 수능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2018년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영어 절대평가를 도입했다. 영어 영역에서 원점수를 기준으로 90점이 넘으면 1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학원가 한 관계자는 “메인 과목이 국어, 영어, 수학인데 영어라는 메인 과목이 사라진 것”이라며 “평가원 입장에선 국어와 수학에서 모두 변별력 있는 문항을 배치해 어렵게 내지 않으면, 그 해 수능 결과를 좌우하는 과목이 사실상 1개 또는 그 이하로 좁혀지는 난감한 상황이 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어 과목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쉬워진 대신, 국어와 수학 변별력이 늘면서 킬러 문항을 가르치는 사교육이 성행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실제로 교육부 통계를 보면, 사교육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19조 395억원이었던 사교육비 규모는 지난해 26조원으로 늘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3년 18조6000억원 ▷2014년 18조2000억원 ▷2015년 17조8000억원 ▷2016년 18조2000억원 ▷2017년 18조6000억원 ▷2019년 21조원 ▷2020년 19조4000억원 ▷2021년 23조4000억원이다.
주목할 것은 영어 절대평가 도입 이듬해인 2019년이 오히려 사교육비가 20조원을 넘기는 기점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장기적으로 보면 영어 절대평가를 통한 경감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2년 23만6000원에서 지난해 41만원으로 173% 늘었다.
영어 절대평가에 앞서 2011년엔 수능과 EBS 연계 비율을 70%까지 높이는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공교육 중심으로 수능을 개편하는 시도 역시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연구소장은 “EBS와 수능 연계는 오히려 공교육을 황폐화시켰다”며 “교과서가 아니라 EBS 교재를 갖고 수업을 하니 학교 수업이 망가지고, 학생들이 학원으로 향하게 만든다는 원성이 나왔다”고 했다.
수능을 5개월여 앞둔 현재, 오는 9월 치러지는 모의평가가 변별력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유형 문제가 나오기보단 ‘준킬러’ 문항이 대거 출제될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준킬러란 난이도가 크게 높지는 않지만 지문이 길거나 문제풀이가 복잡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항을 이른다. 학원가 관계자는 “중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으며, 또 한 문항 차이로 결과가 달라지는 상위권 학생들도 중위권 학생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 사교육에 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k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