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과 노조 동일 책임범위 부당”

현행법 해석으로 입법취지 구체화

고용부 “대법 판결은 입법과는 무관”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이 사실상 도입된 것이나 마찬가지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2010년 11월 17일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연합]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이 사실상 도입된 것이나 마찬가지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2010년 11월 17일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연합]

대법원이 미리보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주목받았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불법 파업’ 사건에서 사실상 노조 손을 들어줬다. 앞으로 회사가 노조원에게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행위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산정하라’는 판단이다. 노란봉투법을 반대해온 재계 등에선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 ‘대못박기’란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두 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노조와 동일한 책임을 부담한다는 전제에서 노조원들에게 50% 책임을 물은 것은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 주도한 주체인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고도 했다. 이번 사건은 조합원들에게 불법 노동쟁의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얼마나 물어야 할 것인지, 즉 책임범위가가 쟁점이었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 주심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의 성향을 토대로 ‘노동계 손을 들어줬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노 대법관이 진보단체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란 배경을 근거로 삼는다. 당초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가 소부로 내려보내졌다. 소부는 대법관 4명이 만장일치로 판결을 내리는데 주심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번 판단은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 전체에 대해 ‘동일하게 연대해 공동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첫 판결이다. 민법은 공동 불법행위 발생 시 교사자나 방조자도 공동행위자로 보고, 손해 발생 주체를 알 수 없을 경우 연대배상할 것을 규정한다. 다만 대법원은 일부 사안에 대해선 ‘형평의 원칙’에 따라 공동불법행위자에게 책임제한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해왔다. 이번 선고는 ‘노동쟁의 사안’도 형평의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 제한 정도를 달리하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하급심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사실상 미리보는 노란봉투법 사건이란 점에서 주목돼 왔다. 국회 본회의 문턱에 계류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 ▷불법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시 엄격한 증명책임 부과로 축약된다. 이 중 ‘손해배상 책임 시 엄격한 증명책임’ 부분은 이번 판결과 맞닿아 있다. 이 조항을 두고 재계에선 “(불법 파업에 따른)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우려를 표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이 노란봉투법이 입법되기 전 현행법 해석으로 입법 취지를 구체화한 셈이기 때문에 반발도 크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이 사실상 도입된 것이나 마찬가지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법원이 노란봉투법을 입법해버린 꼴”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책임 성립에 관한 기존 입장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며 설명에 나섰다. “일정 유형의 사안에 대해 형평의 원칙에 비춰 예외적으로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에 책임 제한을 달리할 수 있다고 판단해왔다”고 했다.

고용부는 대법원 판결이 노란봉투법 입법과는 무관하다고 15일 입장을 냈다. 고용부는 “대법원의 판결은 노조와 조합원을 구분해 노조보다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낮게 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라며 “불법행위자 개별로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16일 고용부가 지난 2009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노조에 대한 손배소송 151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판결이 선고된 73건 중 인용된 사건은 49건으로 인용률은 67.1%를 기록했다. 2020년 기준 전체 손배소 인용률(1심기준) 44.7%보다 높다. 노란봉투법 입법 논쟁 중 하나인 ‘기업의 과도한 손배소’와 배치되는 통계다. 인용률이 높다는 건,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배소를 남발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불법 파업에 따른 조합원들에 대한 책임범위를 개별로 산정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 하면서 향후 소송에서 조합원의 책임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1·2심은 현대차가 손해배상을 제기한 조합원들에게 “2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조합원이 노동조합과 같은 책임부담을 지지 않고, 개별 불법 행위 정도를 판단해 손해배상 규모를 책정하면 축소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용훈·유동현 기자


dingd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