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짓는 고도로 숙련된 작업 ‘작창’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체공녀 강주룡’ [바닥소리 제공]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체공녀 강주룡’ [바닥소리 제공]

귀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부관이 섬뜩한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손톱을 물어뜯다, 급기야 말까지 더듬는데.... “그, 그...그러니까.... 그, 그...그러니까....” 바닥소리의 창작 판소리 ‘해녀 탐정 홍설록’의 한 장면. 대본을 받아 들고, 치열한 고민은 시작됐다. 부관 역할을 연기하며 작창을 짠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소리꾼 강나현은 “이 역할은 캐릭터가 너무나 분명해 어떤 장단을 입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장단을 정하는 것은 ‘작창’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2023 남산소리극축제 네트워킹 ‘바닥소리 작품으로 만나는 판소리 작창의 세계’에선 판소리 단체 바닥소리의 작창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작창(作唱)은 ‘소리를 짓는다’는 뜻이다. 판소리에서 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기반으로 극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이다. 이 땅의 모든 판소리는 ‘작창’을 필요로 한다. 바닥소리에선 소리꾼들이 모두 작창에 참여한다. 이 단체의 기본 정신이 “작창과 소리를 겸한 창작자로의 성장”이기 때문이다.

‘해녀 탐정 홍설록’의 작창 작업을 하며 강나현은 기존 판소리 다섯 바탕의 흐름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이 즐겨쓰던 장단 안에 넣기엔 부관 캐릭터가 너무도 독특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독창적인 역할이었던 만큼 익숙한 장단을 벗어나 각 지역마다 살아있는 무속 장단 발굴을 시작했다. “무속 장단 중엔 엇박을 이용한 장단이 많았는데 그 중 도살풀이 장단을 찾았어요. ‘따따 따따따따, 따따 따따따따’라고 이어지는 부분이 말을 더듬는 대사와 접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나현)

예상은 적중했다. 말더듬이 부관과 만난 이 장단은 판소리의 한 장면을 ‘쇼미더머니’(케이블 채널 엠넷의 래퍼 경연 프로그램)로 뒤바꿨다. 랩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버퍼링을 걸어놓은 것 같기도 한 이 장면은 부관의 약점을 재기발랄한 매력으로 뒤바꿨다. 소리꾼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작창의 묘미’가 기막힌 합을 이룬 장면이다.

작창의 기본은 텍스트의 상황과 정서를 장단(리듬), 길(음계), 성음(악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작창은 작품에서 출발한다. 이미 나와 있는 대본에 소리로 표현할 대목들을 골라 곡조와 장단을 붙인다.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소리꾼들의 ‘작창 첫 단계’는 대본 분석이다. 그런 다음 대본의 의미를 담아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단을 정하고, 멜로디를 입히는 순서로 작창을 이어간다.

작창을 할 땐 익숙한 장단을 찾기도 하고, 조금은 낯선 장단을 발굴하기도 한다. 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판소리를 위해 장단을 새로 만드는 작업도 이어간다. 바닥소리 소리꾼 이승우은 “1800년대 당시에도 유명 소리꾼이 진양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조선 창극 역사에 남아있다”며 “200년 전에도 장단을 만들어 소리를 했는데 지금의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새 장단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와 창극이 동시대성을 입고,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며 작창가는 ‘요즘의 전통’이 요구하는 새로운 직업군이 되고 있다. 장지혜 바닥소리 대표는 “‘장단 메트로놈 어플’을 활용, 작창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며 “바닥소리 작품을 만들 때도 종종 활용한다. 이 안에 모든 국악 장단이 다 들어있어 텍스트에 어울리는 장단을 찾아가며 작창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