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전 연극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어쩌면 연극을 계속 의심하기 때문에 연극을 만드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연예술 작가 겸 연출가, 작곡가로 활동하는 구자하(42)가 세계적인 권위의 연극상인 ‘국제 입센상(International Ibsen Award)’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이자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다.
공연계에 따르면 구자하는 26일 밤(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정부가 수여하는 국제 입센상 본상과 상금 250만 크로네(한화 약 3억 5800만 원)를 수상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을 기려 2007년 제정(2008년 첫 시상)된 이 상은 2010년까진 연속 수상자가 나왔고, 이후 격년으로 시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상은 피터 브룩(Peter Brook), 아리안 므누슈킨(Ariane Mnouchkine), 욘 포세(Jon Fosse),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가져갔다. 구자하는 18년 역사상 비서구권이자 아시아 최초 수상자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시상대에 오른 구자하는 “동시대 감각을 잃어버린 채 과거의 형식에 머물러 있는 연극,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지 않는 연극을 싫어한다”며 “연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무대에는 누가 설 수 있고 누가 말할 수 있는지,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를 아직 듣지 못하고 있는지 계속 질문하고 싶다”고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구자하는 독일 베를린 클럽 씬에서 전자음악 작업을 해오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예술대학 다스 시어터에서 동시대 연극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11년부터 유럽에 거주하며 현재는 벨기에 겐트의 제작극장 캄포(CAMPO) 협력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배우 중심의 연기에서 벗어나 자작 전자음악과 다큐멘터리 영상, 텍스트, 프로그래밍된 비인간 로보틱 오브제를 교차시키는 다큐멘터리 시어터 형식을 띤다.
특히 2014년부터 6년에 걸쳐 완성한 ‘하마티아 3부작’을 통해 유럽 비평계의 주목을 받았다. 과열된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다룬 ‘롤링 앤 롤링(Lolling and Rolling, 2015)’,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청년 세대가 겪은 경제적 불안과 고립을 세 대의 해킹된 전기밥솥과의 대화로 구성한 ‘쿠쿠(Cuckoo, 2017)’,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구 연극이 이식된 한국 연극의 역사를 돌아보고 전통 공연과 연극 정체성의 단절을 종이접기 두꺼비와 함께 짚은 ‘한국 서양 연극사(2020)’ 등은 개인의 경험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4년 발표한 신작 ‘하리보 김치(Haribo Kimchi)’에서는 포장마차를 무대에 올려 음식 문화를 둘러싼 문화적 혼종성과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다뤘다.
구자하는 유럽 무대 진출 이후 꾸준히 평가를 축적해 왔다. 2017년 네덜란드 신진 예술가를 지원하는 ‘영 아트펀드 암스테르담(Young Artfund Amsterdam·YAA) 재단 예술상’을 수상했고, 2020년에는 ‘한국 서양 연극사’로 네덜란드 주요 연극상인 ‘BNG 은행 연극상(BNG Bank Theaterprijs)’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심사위원회는 올해 수상자 선정 기준으로 “너무 자주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세상에서 연극을 사이의 공간, 즉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상상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하는 상상력”을 제시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잉그리드 로렌첸 노르웨이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구자하는 이데올로기와 플랫폼의 관습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녔다”며 “작품을 관람하고 나면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고 평했다.
구자하는 ”내가 입센상을 받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직 답을 찾지 못했고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계속 질문하고, 이미 그려진 지도의 중심이 아닌 아직 그려지지 않은 곳을 향해 움직이고 싶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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