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검’, ‘옹옹옹’ 서동민 인터뷰
10월 2일 ‘말린 고추와 ...’ 개막
퀴어, 페미니즘, 소수자 넘어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연대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90년대 그 시절 ‘소녀들’의 마음속에 세일러문이 살았다. 1991년생 서동민 작가는 데뷔작 격인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에서 남매이기도 자매이기도 한 주인공들을 통해 이 노래를 꺼내왔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애니메이션 ‘달의 요정 세일러문’ OST ‘달빛의 전설’ 중)
규빈과 은빈은 어릴 적 함께 ‘달빛의 전설’을 불렀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살며시 너에게로 다가가, 모든 걸 고백할 텐데”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 결코 꺼낼 수 없었던 속마음을 품은 ‘다 자란’ 둘의 듀엣은 각자의 사정과 사연으로 애틋했다. 그들이 꿈꿨던 변신, 언젠가 이뤄지길 바란 마음이 대체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서글펐을까.
‘달의 요정, 세일러문’은 일종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로봇이 나오는 소년만화를 보느냐”,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를 보느냐”가 청소년의 퀴어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퀴어 청소년에게 ‘변신 소녀물’은 단지 화려하고 예쁜 모습으로 달라지는 변신이 나와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드러나는 변신의 상징”이라며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 시간이 지나 이렇게까지 될 줄도 몰랐던 유년 시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두 자매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담고 싶었다”고 들려줬다.
그의 무대는 평온한 일상의 결을 비집고 나오는 균열의 목소리를 응시한다. 가짜 남편 앞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은 아내(‘옹옹옹’), 무협의 오랜 규칙을 거슬러 검을 쥐는 여성 작가(‘펜과 검’), 비밀의 문턱을 넘어선 뒤에야 서로의 처지를 마주하는 가족(‘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까지. 동시대 연극계의 ‘독보적 시선’으로 자리한 서동민 작가는 올 한 해 유난히 바쁘다. 두산아트센터 ‘DAC아티스트’로 선정돼 신작 작업에 한창인 와중에 오래 품었던 ‘펜과 검’, ‘늙지 않는 마음’, ‘옹옹옹’까지 무대에 올렸고, 다음 달 2일 초연 당시 매진 사례를 기록, 2024년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 서울예술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10월 2~25일, 마포아트센터)의 재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서 작가는 “가르치려 들지 않고, 인물들이 정해진 자리에서 한 발 비켜설 때 마주하게 되는 진짜 이야기로 관객과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퀴어, 페미니즘, 모든 소수의 이야기…“무덤덤해질 수 없어”
2010년, 서울 은평구 수색동. 재개발을 앞둔 낡은 다세대 주택에 한 가족이 산다. 우악스러운 할머니, 아들에게만 매달리는 엄마, 온 집안의 편애를 한 몸에 받은 오빠 규빈, 그리고 지방대 치대에 붙어 이 집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스무 살 은빈.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복숭아향 립스틱이 자꾸만 사라진다. 은빈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빠가 의심스럽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어릴 적부터 세일러문을 좋아했던 오빠가.
무대 위로 수색동의 연립주택 한 곳을 열고 들어간 듯한 집안 풍경이 펼쳐진다. 지명은 작가의 기억에서 건져 올렸다.
“제가 은평구 수색동에 살았어요. (웃음) 그 공간을 적어두면, 어릴 적 살던 곳이니 몰입이 더 편하더라고요.” 이 공간을 가져오며 서 작가가 세운 ‘환경의 설정’은 작품의 보이지 않는 뼈대가 됐다. 그는 “규빈이네 집은 재개발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게 최종 전략이었다”고 했다. 부동산값 폭등이 찾아오기 전, 로또 당첨 이상으로 바랐던 ‘재개발’을 향한 염원으로 저마다의 고단함을 견뎠다.
남매가 놓인 상황과 환경은 누구나의 현실을 섞었다. 2010년대에 ‘아들과 딸’ 차별이 난데없다고? 천만의 말씀. 서 작가는 “대학에서 여자애들은 재수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했다. 연극에서 은빈은 오빠 때문에 알바에서 잘린 뒤 “사고는 네가 쳐놓고, 왜 내 알바까지 잘리게 만드냐”“며 ”넌 집에서 시켜줘 재수를 하지만, 난 재수하려 시간 쪼개가며 알바로 겨우 버틴다”고 토로한다.
서 작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주류에서 조금 비켜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상황을 주로 쓴다. 퀴어(‘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와 페미니즘(‘펜과 검’), 노화(‘늙지 않는 마음’)를 작품의 중심에 세우나, 타인을 대상화해 관찰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대의 위계와 배제를 들여다보는 절실한 렌즈로 무대를 비춘다. 서 작가는 “퀴어 페미니즘이란 것이 내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 대학에서 퀴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내 인생을 설명해 주는 학문이 여기 있다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그의 관심은 보다 넓은 곳으로 확장됐다.
“자기가 약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약자성을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서로 연대할 수 있고 또 서로 더 치열하게 싸울 수도 있지만, 무덤덤하게 눈을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 작가가 인물을 구축하는 원칙은 다층적이다. 그는 인물에게 가로축과 세로축, 즉 X축과 Y축의 모순이 공존해야 비로소 입체성이 살아난다고 믿는다. 한 인물에게 “미운 점과 사랑스러운 점을 동시에 심어두는” 방식이다. 여기에 하나의 저울로 무게를 달 수 없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들을 나란히 세운다. ‘정형화된 피해자성’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속 모든 것을 오빠에게 내줬던 한(恨) 많은 딸 은빈,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에 도리어 조용히 자신을 수긴 채 살아온 규빈이 그렇다. 서 작가가 작품에서 세운 것은 ‘익숙한 재현’ 너머의 이야기들이다.
“보통 미디어가 성소수자를 재현할 때 ‘남성과의 연애’를 중심에 둘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겪는 문제는 ‘저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남성과의 관계에서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가 요즘의 화두인 것 같아요.”‘
쉽사리 재단하기 어려운 주제를 올리면서도 그의 작품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스스로 “유머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의 무대는 울고 웃기를 반복한다. 객석에선 키득거리기도, 깔깔거리기도 하지만 당혹스러운 헛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골탕 먹이는 방식의 웃음을 가져오진 않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을 100분 동안 앉혀두기 위해선 웃음이 필요한데, 쉬운 웃음들이 기존 힘의 논리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려 한다”고 했다. 규빈이가 스타킹을 신는 장면에서의 대사를 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당초 “야, 너 다리털 삐져나왔어”라는 대사였다. 관객은 웃었지만, 구시대의 개그 프로그램 같은 대사가 누군가에겐 상처나 불쾌함일 수 있다고 판단해 덜어냈다.
글쓰기의 동력은 “분노와 답답함”…진정한 연대를 향해
서 작가의 등장은 제도권 문단의 통상적인 경로와는 다르다. 국문과를 전공해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유명 교과서 출판사와 무협지 회사를 거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의사인 쌍둥이 형의 권유로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며 10분 단막 희곡을 쓴 것이 그의 첫 창작. 이후 동료 극작가 박주영·구하나와 ‘창작집단 담’을 결성해 낭독 쇼케이스와 지원사업의 문을 쉼 없이 두드렸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과 ‘펜과 검’의 초고 역시 창작집단 담 활동 당시였던 팬데믹 시기에 탄생했다. ‘말린 고추’는 이후 국립극단 ‘창작공감: 희곡’ 선정 등 4년간의 개발을 거쳐 2024년 정식 초연을 하게 됐다.
불과 5~6년 만에 그는 끊임없이 신작을 쏟아내고 있다. 서 작가는 창작을 이끄는 원초적인 에너지는 “답답함과 분노에 있다”고 돌아본다. “가족 안에서도, 사회를 살아갈 때도 불쑥 솟구치는 “‘ 내 말을 온전히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암담함”이다. 하지만 그 분노를 단발마의 구호로 삼진 않는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은 한 문장만 던져도 온라인에서 100명 중 90명이 고개를 끄덕여요. 하지만 ‘아무리 부모라도 용서 못 할 일이 있다’는 말은 한 문장으로 설득이 안 돼요. 장면을 보여줘야 하고, 맥락이 차곡차곡 쌓여야 하죠. 그래서 저는 100분짜리 장막극을 쓴다면, 그 100분이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 화가 난 사회운동가 과’라고 말하지만, 이야기로 타인을 가르치는 것을 경계한다. 서사의 위계도 거부한다. 서 작가는 “역사를 다루면 대단히 큰 이야기이고, 젠더 이슈나 일상을 다루면 작은 이야기라는 구분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색동 연립주택의 부엌 한쪽, 무협 대본소 같은 주변부 공간에서 ‘사회적 모순’을 건져 올리는 비결이다.
서 작가의 시선은 동시대 일상극에 머물지 않고 무협과 고전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지난 7월 여행자극장에서 박주영 연출과 올린 ‘펜과 검’은 과거 무협 대본소에서 일하며 겪었던 부조리한 노동 환경과 “여성은 체질상 고강한 무공을 익힐 수 없다”는 장르적 편견을 통렬하게 맞받아쳤다.
“무협 소설에선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여자는 체질상 남자보다 뛰어난 무공을 익힐 수 없다는 장르적 관습이 있어요. 완력이 적다는 이유로 선을 긋는 건 향유자들의 고집이지, 절대 바뀌어선 안 되는 성스러운 법칙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는 무협지 안에서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교차하며 남녀 간 ‘기회의 불평등’을 잘근잘근 꼬집는다. “무협 세상 안에서 검(劍)을 쥘 기회가 특정 인물에게만 주어졌듯, 사회에서도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를 교묘하게 깎아내려 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서 작가는 돌아봤다. 조애너 러스의 비평서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에 공감한 대목이 많았다는 그는 여성 검객들의 칼끝이 맞부딪치는 호쾌한 무대로 ‘쓰는 행위의 권력’을 되찾아왔다.
그런가 하면 고전 ‘옹고집전’을 비튼 무장애 음악극 ‘옹옹옹’(9월, 국립극장)에선 현대의 능력주의와 주류로 속하는 사람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준을 다시 물었다. 정해진 자리와 그 바깥,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을 묻는 것은 서 작가가 꾸준히 해오는 질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경계를 넘어 확장 중이다. 갈등 없이 양보하기만 하는 ‘무해한 이야기’의 온기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의 모순을 충실히 투영해야 비로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서 작가 지론이다. 그는 자기 안의 질문과 지향을 다양하고 과감한 영역으로 뻗어가겠다는 생각이다. 모범적인 소수자 서사로 관객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린 그는 다음 걸음은 “사회적 검열을 한 꺼풀 벗겨낸 ‘불건강한 퀴어”로 향한다. 서 작가는 “퀴어라고 해서 늘 밝고 모범적인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다. 퀴어 축제를 두고도 ‘음란하다’며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그 기준마저 사회가 정한 틀”이라며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트랜스젠더 인물의 거침없는 독백을 담은 모노드라마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관객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라도 ‘1인극의 시선’으로 날것의 목소리를 쏟아내 버리면 강력한 극적 설득력이 생길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 이야기의 끝에 자리한 것은 연대다.
“‘저런 사람과 친구 하기는 싫을지라도, 저런 인생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연대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내가 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잖아요.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서로 다름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연대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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