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안 열어줘요. 보통 그런건 ‘나 좀 내버려두라’고, ‘나 그냥 포기하고 가라’고 하는 거예요. 매주 찾아가서 문 두드리고, 밖에서 창문 향해 ‘OO야, 선생님이다’ 불러보고, 그래도 못 만나면 메모지에 ‘선생님, 오늘도 다녀간다’ 써서 붙여놓고 가니까 어느 순간 문을 열어주더라고요.”
고위기 청소년.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정신건강에 위기를 겪는 청소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주목받고 있는 대상이다. 정부는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 정책을 탄탄히 하기 위해 고위기 청소년을 상담하는 ‘청소년 동반자’ 등의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학교·지자체·전문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겠다 밝혔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소년 마음건강을 위한 약속 1호’를 발표한 지난 20일, 경남 창원에서는 창원시와 경남도교육청, 일선 학교,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등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청소년 동반자와 또래상담을 지원하는 학생 등도 참석했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은 코로나19를 전후해 위기 징후가 달라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대 우울증 환자 수는 2018년 4만3000여명이었던 것이 2021년에는 5만7000여명으로 늘었다. 청소년상담전화(1388)를 통한 정신건강 상담건수도 같은 기간 15만여건에서 21만여건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대인관계가 단절됐던 영향으로 ‘은둔형 청소년’도 늘어나고 있다. 밤새 SNS로 얼굴 모르는 온라인상의 친구들과 소통하다 막상 학교에 가보면 마스크를 써 얼굴도 잘 모르는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들이 오히려 낯설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맺어야할지 막막하다. 학교가 재미없어지니 수업도 안듣게되고, 밤새 SNS로 친구를 찾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학교에서는 결석이 잦거나 적응을 잘 못하는 징후를 보이는 청소년들을 상담복지센터 등으로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청소년 동반자가 해당 청소년을 찾아가 면담한다. 정신건강에 위기가 온 청소년들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동반자가 직접 찾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반자들은 “처음에는 청소년들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데다, 가족들도 집으로 상담을 온다면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정신건강이 무너지고 있는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세심하게 돌봐주지 못한다. 심지어 가정에서의 폭력 등이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도 있다. 한 동반자는 “지방이다 보니 다문화가정인데 아빠가 폭력적인 성향이거나, 부모님이 모두 교대근무 등으로 바쁘다보니 아이 혼자 지내는 가정 등이 많다”고 전했다. 폭력에 노출되거나, 방치되거나 하는 모든 요인들이 청소년들을 은둔형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가출하게 하는 것이다.
고위기 청소년들이 세상으로 나오고 자립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방안은 결국 꾸준히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몇 주를 모른채 하던 아이들이 한 번 문을 열어주고 나면 각종 검사도 받고, 새벽에도 동반자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 학교에 다시 재미를 붙이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학교 복귀는 안되더라도 자립의 길을 찾는다. 첫 사례를 전해준 동반자는 “은둔형으로 집에만 있어 몸집이 많이 불어났던 아이가 지역 체육센터에서 운동도 하고, 조리사 자격증을 따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며 “나를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이들은 용기를 낸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단순히 동반자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연계 시스템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양미진 한국청소년 상담복지개발원 통합지원본부장은 “풀어가다보면 결국 나오는건 시스템이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학폭을 당하기 전에 예방할 수도 있었고, 적절한 조치 있었으면 은둔형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부모님이 아이를 집에만 있게 하지 않았을거고, 부모님도 피폐해지지 았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240개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4500개 학교를 연계, 청소년들이 언제든 상담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는 고위기 청소년 특화 프로그램인 ‘집중심리클리닉’을 운영하고, 국립정신건강센터,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등 전문기관과 업무협약(MOU)도 추진할 예정이다. 청소년 안전망 확보를 위해 부처마다 관리하는 해당 청소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이력 시스템도 논의중이다.
〈창원=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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