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최근 서울대ㆍ고려대 등 대학 내 교수 성희롱ㆍ성추행 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진 가운데 원인과 해결방안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에 대한 교수의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불거진 것이라고 지적하며 제도 및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임혜경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16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성폭력 자체가 ‘권력관계’에서 기인된 것”이라면서 “흔히들 ‘甲乙문제’로 보고 있는 교수 성폭력 문제도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성폭력의 한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교수 성폭력 문제는 남-녀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충북대에서는 지난 14일 남자 교수 A(40) 씨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남자 제자를 성추행해 경찰에 체포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성추행ㆍ성희롱 사건이 벌어져도 덮어놓고 쉬쉬하는 대학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 탓에 대학 내 성폭력 문제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대학 내 상담소가 설치돼 있다고는 하지만 학교에 소속된 관계자나 교수가 사건을 접수해 처리하기 때문에 가급적 사건을 크게 키우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폭력 사건 발생 후 처리 과정에서 ‘제도’의 허점이 사건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대학교 성희롱ㆍ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12년 조사 대상 280개교 가운데 성희롱ㆍ성폭력 관련 규정에 학생의 조사대책기구 참여를 명시한 대학은 53%에 그쳤다. ‘외부전문가의 참여’는 20%에 불과했다. 진상 조사기구에 피해 학생을 대표할 만한 위원이 교수 측에 유리한 결론이 날 가능성이 적잖은 셈이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가ㆍ피해자간 공간분리나 가해자의 접근금지를 명시한 조항이 있는 대학은 23.6%에 머물렀다.
또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기 극도로 꺼림에도, 이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당사자의 신고만을 받는 것도 문제다. 서울의 한 시립대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이름ㆍ전화번호ㆍ피해내용 등을 기재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해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도록 만들고 있다.
이임혜경 소장은 “제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권력관계에서 기인한 성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타인이 하는 건 성추행, 성희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하는 건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거듭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대학가 교수 성추행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지난 14일 각 대학에 진상조사나 징계를 피하기 위한 성범죄 교수들의 의원면직을 막는 학칙 개정을 권고했다. 현재 국ㆍ공립대의 경우 교수의 비위 사실이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에 해당할 시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학이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