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일본영사관, 드라마 촬영지로

소녀상의 그림자는 할머니 형상

화신백화점 돈 벌어 독립자금 송금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상당수 일본인 거주지, 은행과 한국상인들의 가게가 있었던 목포역~목포항 사이 매립지에도 숱한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하나의 건물이나 유물이 아니라 11만4083㎡(602필지) 공간이 통째로 문화재(등록문화제 제718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다. 전국 평균 인구증가율의 11배나 되었던 목포의 개항 당시, 각국 거류지의 총 면적은 72만6024㎡. 이 역사문화공간과 연결된 목포해상케이블카를 묶여 2022년말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올랐다.

‘호텔 델루나’ 드라마 촬영지가 된 옛 주목포일본영사관.
‘호텔 델루나’ 드라마 촬영지가 된 옛 주목포일본영사관.
옛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그림자가 할머니 모습이다. 오래도록 일제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결기가 담겨 있다.
옛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그림자가 할머니 모습이다. 오래도록 일제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결기가 담겨 있다.

목포역 인근 옛 호남은행 건물을 마주하면 목포의 포(浦)에 ‘점(·)’하나가 덜 찍혔는데, 현정은 현대 회장의 조부 현준호가 “점하나 찍고 눈 감겠다”했지만 이루지 못해 지금도 틀린 글씨로 남아있다.

로비엔, 락희호텔이 들어설 옛 평화극장에 있던 영사기 한 대가 배치돼 있다. 영사기 앞에 서면 배우가 된 기분이 든다.

현준호는 산청출신 은행가 김신석을 스카우트해 은행을 키웠는데, 김씨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모, 김윤남의 부친이다. 이렇게 삼성-현대는 목포에서 연결된다. 이곳은 지금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탈바꿈했다.

1932년 목포 긴자 사거리에 지은 구 목포화신연쇄점은 근대 상점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일본 상인이 총포, 화약, 서양 가구 등을 수입해서 팔았다. 이후 한국인 서병재씨가 인수하여 화신백화점으로 운영했고 그의 동생 서병인씨는 백화점 수익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댄 목포 화신백화점
독립운동 자금을 댄 목포 화신백화점

1897년 목포가 개항되고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주변에 창고가 많이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목포에는 조선운송주식회사와 조선미곡창고회사 등 창고를 활용하는 전문회사가 있었다. 이곳 역시 당시에 지어진 숱한 창고 가운데 하나로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박공지붕 형태의 창고 3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백반 골목길 안쪽에 숨어있어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고 용궁장으로 가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구 갑자옥모자점은 단발령 이후 모자수요가 급증하자 으뜸 모자점이라는 뜻으로 갑자를 넣어 1927년에 개점했다. 제주 출신의 문공언은 오사카 낭화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목포에서 모자 전문 상점을 열었다. 대전, 군산, 제주에 지점을 열 정도로 사업이 잘 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쌀 10가마를 팔아야 중절모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고가였는데 전당포에 모자를 맡기고 돈을 빌렸다는 어른들의 얘기가 전하기도 한다. 모자 박물관으로 개관을 앞두고 리모델링이 진행중이다.

단발령으로 돈을 번 갑자옥모자점의 당시 모습 사진
단발령으로 돈을 번 갑자옥모자점의 당시 모습 사진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위 근대역사관1은 구 일본영사관이었다. 그 앞엔 소녀상이 있고, 소녀상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만들어 일제가 입힌 상처를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뜻을 담았다.

인천, 부산의 경우 청나라 전관거류지, 일본인 전관거류지 등 나라별 거주지가 허가되었으나 목포는 공동거류지 하나였기 때문에 일본, 러시아, 영국 등 각국은 좋은 위치에 영사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고 하는데 일본이 가장 좋은 터에 영사관을 설치하게 됐다. 1900년에 완공된 일본영사관은 을사늑약 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1906년부터는 목포이사청으로 사용되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해방될 때까지는 목포부청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목포시청으로, 1974년에는 시립도서관, 1990년부터는 목포문화원, 2014년부터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포대중음악의 전당으로 탈바꿈한 옛 호남은행
목포대중음악의 전당으로 탈바꿈한 옛 호남은행

지을 당시 목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가장 높은 건물이었는데 오사카에서 가져온 벽돌을 사용했다. 내부에는 각 방마다 영국산 타일과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장식된 벽난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근대역사관 2관은 구 동양척식 주식회사 목포지점이다. 1908년12월에 설립한 특수 회사로 일제의 경제적 수탈의 상징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1921년에 신축된 후 24년간 사용된 건물이다. 해방 후에는 43년간 대한민국 해군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구 목포 공림심상소학교 옆 공터에 그려진 오징어게임
구 목포 공림심상소학교 옆 공터에 그려진 오징어게임

구 목포 공림심상소학교는 노적봉 아래 일제 부촌앞에 세운 일본인 학교였다. 강당 건물은 1929년에 지은 것으로 규모가 지금 보기에도 어마어마하다. 본관 복도에는 한국 토종 호랑이 박제가 전시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유달초등학교로 개칭됐고, 이 강당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개최되었다. 강당 옆 공간에 추억의 놀이마당을 조성해 오징어게임 등 놀이를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요즘 목포사람들은 이난영의 대표곡을 원래 제목 대로 ‘목포의 사랑’으로 부른다. 눈물이 희망과 즐거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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