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주택만 1138채 대기 중
갭투자 물건 하반기 급증할 가능성
“낙찰률, 낙찰가율 크게 하락할 것”
“매매시장 급매물보다 싸게 살 기회”
“선순위 임차인, 권리관계 파악 주의해야”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이달 6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경매6계.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사망한 ‘빌라왕’ 김모 씨 소유 주택이 처음으로 낙찰됐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소재 54㎡(이하 전용면적) 빌라(다세대)다. 감정가는 2억6000만원으로 세 번의 유찰 끝에 이 빌라에 현재 살고 있는 임차인 신모 씨가 홀로 응찰해 새 주인이 됐다. 낙찰가격은 1억8400만원으로 신씨의 전세보증금 1억8500만원과 100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신씨는 대항력을 갖춘 ‘선순위 임차인’이었다. 다른 사람이 낙찰받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해 부담이 크지만, 전세사기를 당한 선순위 임차인이 직접 낙찰을 받으면 본인 보증금 이하로 돈을 내지 않아도 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직접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여파로 집값이 떨어지면서 이런 ‘깡통주택(집값이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과 비슷하거나 낮아져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모두 돌려주기 어려운 주택)’이 경매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경매시장에 이런 주택이 올 하반기 이후 쏟아질 가능성이 큰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사망한 빌라왕 김씨 소유 주택의 임차인 중 전세만기가 돌아와 보증금 반환을 위해 경매를 신청한 물건만 이달 13일 현재까지 총 47채다. 소형 빌라가 가장 많은 24채, 오피스텔 10채, 주상복합 8채 등이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자금난을 겪던 김씨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주택이 급증했던 만큼, 김씨 소유 주택 경매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김씨 소유 주택만 따져도 1139채 중 이제 한 건 낙찰된 데 불과하다”며 “남은 1138채도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 순으로 경매시장에 대거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매시장에 금리인상 효과는 아직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경매시장에서 금리인상 효과가 나타나는 건 금리인상이 본격화하고 난 때부터 1년 정도 지나고부터다. 채무자인 집주인은 금리가 올라도 최소 3개월 정도는 버티며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연체가 길어지고 은행 등 채권자들은 4-5개월 이후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로 넘기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 절차가 아무리 짧아도 7개월 이상 걸린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빌라왕’ 사례뿐 아니라 금리부담으로 ‘갭투자’를 한 집주인들이 견디지 못해 경매 처리되는 주택들도 하반기부터 급증할 것”이라며 “당분간 경매시장에 주택 물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은 경매를 통해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경매시장에 늘어나는 주택 물건으로 인해 매수심리는 위축되고, 낙찰률(경매 물건 대비 낙찰물건 수 비율)과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입지 좋은 지역 아파트 등 평소라면 고가에 낙찰됐을 경매 건도 덩달아 경쟁률이 추락하고 인기가 시들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영진 이웰에셋 대표는 “‘전세 사기’나 무리한 ‘갭투자’로 인한 경매 물건은 대부분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을 떠안고 낙찰받아야 하기 때문에 응찰자가 잘 나서기 힘들다”며 “경매 물건을 제대로 분석할 줄 알면 이런 물건을 피하고, 괜찮은 물건을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현 연구원은 “경매 물건을 판단할 때 권리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해당 지역에 실수요자가 충분한지, 향후 수요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지 등을 따지는 게 기본”이라며 “가급적 익숙한 지역의 경매물건을 노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경기 침체기에 쏟아지는 경매 물건은 대부분 권리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종 판단은 전문가 조언을 구한 후 내리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