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하이브가 지난 10일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4.8%를 422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음을 알려 SM의 최대주주가 됐다. BTS와 에스파가 같은 회사 소속이 된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SM 현 경영진은 카카오에 신주 123만주와 전환사채 발행으로 114만주를 추가로 확보하게 해 SM 지분율 9.05%로 SM의 2대 주주가 되게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수만 전 총괄은 하이브 방시혁 의장과 손을 잡음으로써, SM 현 경영진과 카카오는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짜야하게 됐다.
이수만 전 총괄은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 주주침해의 최소성 조건 등의 충족 없이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건 위법이라며 SM을 상대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한 상태다.
이에 SM 공동대표이사를 비롯한 센터장 이상 상위직책자 25인 등 현 경영진은 이수만 전 총괄의 가처분 신청 및 하이브 인수설에 대해 “하이브를 포함한 외부의 모든 적대적 M&A를 반대한다”면서 “SM과 카카오와의 전략적 제휴는 SM 3.0 전략의 실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경영 판단에 따른 것이다”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자존심 싸움과 감정 대결이 개입돼 있는 듯하다. SM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이 “아니, 너희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괘씸하게 생각한 끝에 나온 리액션이 아니냐는 것. 더구나 그동안 SM 인수설이 나온 카카오, 네이버, CJ ENM이 아닌 하이브와 이수만 전 총괄의 결합은 의외로 여겨졌다.
미국 스타트업에서는 창업자가 회사에서 물러날때 이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SM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상으로 따져봐야할 중요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우선, 음악 콘텐츠의 제작과 프로듀싱 문제다. 콘텐츠 산업에서는 제작과 프로듀싱이 구분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 구분이 명확치 않고 환상이 조합돼가는 듯한 조짐이 보인다. 이렇게 해서는 K팝의 미래는 밝지 않다. K팝은 국가나 기업이 아닌 몇몇 프로듀서 개인의 혁신 모멘텀에 의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SM 초기부터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함께 해온 유영진 이사는 “2월 3일 (SM) 현 경영진의 SM 3.0 시대 비전 발표에서 이수만 선생님의 프로듀싱이 제외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라면서 “컨텐츠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듀서의 역할이 빠져 있는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한다. 발표는 멀티 프로듀싱이라고 했지만, 내용은 멀티 제작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라고 했다.
이수만 전 총괄은 K팝의 창시자라고 한다. 이 말에는 제작보다는 프로듀싱에 방점이 찍혀있다. 방시혁 의장도 이를 인정한다. 방 의장은 “하이브는 (이수만) 선배님께서 개척하고 닦아오신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주셔서 꽃길만 걸었다”고 언급할 정도다.
따라서 프로듀싱이 배제된, 또는 약화된 상태에서 제작시스템만의 개선과 진화로는 앞으로의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이끌 수 없다.
이수만의 프로듀싱에 절대 의존하는 SM의 단점이 없지는 않다. 콘텐츠의 일관성과 독창성은 유지돼 세계관 창출에도 유리하지만 콘텐츠의 갯수가 모자란다. ‘Black mamba’ ‘Next level’ ‘Savage’로 잘나가던 에스파의 후속곡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SM은 일찌감치 거대 규모의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팀을 가동하고 있는데, 맞춤음악제작에 주력하며, 결국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프로듀싱은 이수만 전 총괄이 맡았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이수만 전 총괄은 평소 멀티 프로듀싱 체제를 구상했다.
유영진 이사는 “멀티 프로듀싱 시스템은 평소 이수만 선생님이 이수만 이후의 SM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일이고, 프로듀싱의 노하우를 매뉴얼화하여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SM과 하이브의 결합은 단순히 BTS와 NCT 127이라는 강력한 남자그룹만의 결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수만 전 총괄은 방시혁 의장이 음악인으로서 문화의 가치를 알고, K팝이 가야 할 미래 방향에 대한 철학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방시혁 의장도 “하이브는 이수만 선생님께서 추진해 오신 메타버스 구현, 멀티 레이블 체제 확립, 지구 살리기를 위한 비전 캠페인과 같은 전략적 방향성에 전적으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이브의 역량을 투입해 (지배구조개선과 멀티 프로듀싱 체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구상을 밝혔다.
이 말을 했던 방시혁 의장은 단순히 서울대 선배로서의 이수만이 아닌, 둘 다 프로듀서라는 점에서 이수만 전 총괄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한 것 같다. 방시혁 의장은 BTS라는 히트 콘텐츠를 프로듀싱한 혁신가지만, 뉴진스는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 하위 독립레이블(어도어)에서 만들어졌음을 간파하고 있다. 이수만 전 총괄도 평소 하이브의 이같은 멀티 독립레이블 체제에 적극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이번 결합도 가능해졌다.
두번째는 이번 분쟁에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다. 원래 SM은 경영 중심 조직이 아니라, 아티스트에 최적화된 조직이었다. 그런데 이번 분쟁에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김민종이 한마디 하긴 했지만,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엑소, 슈퍼주니어, NCT 127, 레드벨벳, 보아, 강호동, 신동엽 등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앞으로 이렇게 되면 좋고, 이렇게 되면 불안하고,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해야 하는데, 이들은 눈치를 보고 있을 것이다. 만약 계약기간 만료와 동시에 이들이 모두 또는 일부가 빠져나가버리면 경영자들끼리의 다툼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SM은 주식회사인 만큼 지분을 많이 확보해야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최대지분을 가진 쪽에서 자신의 뜻대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대표이사를 뽑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가치는 돈으로 쉽게 살 수 없다. 돈의 논리로만 가면 문화산업을 망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아티스트가 배제된 채 지분 다툼으로만 진행되는 현 사태는 우려스럽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이수만 전총괄-하이브, SM 현 경영진-카카오 양자중 택일한다면 전자가 훨씬 효율성이 높다고 본다. 향후 K팝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멀티 프로듀싱 체제 구축와 프로듀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와 효율이 더 높은 건 하이브와 이수만의 결합이다. 지분확보 전략만으로도 현재로서는 하이브가 카카오보다 더 유리하다.
콘텐츠 산업에서는 대체가능과 대체불가 요소가 있다. 제임스 카메룬, 스티븐 스필버그, 최근 고인이 된 작곡가 버트 바카락 같은 분은 대체 불가다. 버트 바카락은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1969년)를 작곡하고, 가스펠 그룹에서 활동하던 디온 워윅을 위대한 스탠더드 팝 가수로 만들었다.
‘뉴진스’는 민희진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기 때문에 스타일리시하고 트렌디하다. 블랙핑크에는 프로듀서 테디의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이수만 전 총괄의 결정을 지우기 위해 에스파의 신곡을 급히 준비하는 SM의 현 체제는 이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음악산업계 핵폭탄급 파장을 가지고 올 이번 사태의 논의가 이런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관점에서도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반도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반대는 나라의 미래를 땅에 묻는 매국노(埋國奴)”라고 말했다. 콘텐츠 산업도 결국 시간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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