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 다이나믹 코리아 그 자체

위험관리 없는 개발 실패 불보듯

혁신 주체, 민간·개인 될수있게

제도·법 국가 개조 수준 변혁을

이장우 세계문화산업포럼(WCIF) 의장은 “우리 문화산업은 그동안 위기와 역경 속에서 빛을 발했듯이 미래도 또 다른 혁신 모멘텀을 작동시켜 슬기롭게 개척할 것으로 믿는다“고 낙관론을 폈다. 이상섭 기자
이장우 세계문화산업포럼(WCIF) 의장은 “우리 문화산업은 그동안 위기와 역경 속에서 빛을 발했듯이 미래도 또 다른 혁신 모멘텀을 작동시켜 슬기롭게 개척할 것으로 믿는다“고 낙관론을 폈다. 이상섭 기자

이장우 세계문화산업포럼(WCIF) 의장이 하는 일은 특이하다. 기술과 문화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그 중심에는 혁신이 있다. 그는 혁신을 학술적으로 정리해 해외에 알리고 전략과 정책을 제안한다. 오랜 기간 기업의 혁신을 연구한 ‘혁신 전문가’로서 K팝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하나의 성공산업으로 발전한 과정에도 혁신 모멘텀이 존재함을 밝히고, 혁신의 관점에서 K팝의 성공과 미래 전망을 내놓는다.

▶기술과 문화를 오가며 혁신과 전략을 연구=이 의장은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과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는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해 34년 간 연구 활동을 하고 2022년 정년퇴직한 후 명예교수로 있다.

“82년 카이스트 박사과정부터 혁신에 대해 공부했다. ‘벤처’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1985년 이민화 박사와 함께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한 의료기기업체이자 1세대 벤처기업인 메디슨의 창업에 참여해 발기인과 고문을 지냈다. 그때부터 97년 창업 촉진을 위한 벤처기업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10여년 간 벤처 기업 발전에 대한 컨설팅을 했다. 많은 벤처 기업 경영을 자문해주고 인큐베이팅을 도왔다. 이 때가 대기업과 벤처기업 혁신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벤처 컨설팅을 하면서 한글과 컴퓨터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을 도와주고, 서울벤처인큐베이터 센터장을 지내며 민간 창업을 지원해주기도 하면서 1990년대 후반 이후 문화산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0년에 SM엔터테인먼트의 코스닥 상장을 시작으로 문화 기업들의 출연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K-혁신이 본격화됐다. 93년에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으로 이어져왔다. 메디슨 등으로 시작된 벤처들이 늘어나고 97년 벤처특별법 제정, 벤처기업협회 구성 등 기술벤처의 약진과 같은 시기에 문화 콘텐츠의 혁신도 시작됐다. 96년 HOT가 데뷔를 시작으로 다양한 아이돌 그룹들이 탄생했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 K-이노베이션이 만들어졌고 오늘날 우리를 선진국으로 만든 핵심동력이다.”

▶K-팝 이노베이션이 한국형 혁신의 미래= 그래서 이 의장은 우리나라 문화혁신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2002년 사단법인 한국문화산업 포럼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제안과 민간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해왔다.

“당시 비언어극인 난타를 기획한 문화기획자 송승환, S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이수만 프로듀서, 이강복 CJ 엔터테인먼트 대표 등을 설득해 문화산업포럼을 만들었다. 문화를 산업과 연계시켜 마케팅과 콘텐츠 수출 등의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그 어떤 곳보다 먼저 했다. K팝 한류라는 용어를 별로 쓰지도 않을 때 연구 지원을 해오고 글로벌을 지향한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 의장은 K-팝도 삼성전자의 반도체처럼 이노베이션을 통해 성장, 발전했다고 했다. K-팝의 5대 혁신성과로는 ▷창의적인 아이돌 생산 시스템의 구축과 확장 ▷해외 시장의 개척 ▷디지털 기반의 유통 마케팅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월드 투어와 셀리브리티화 ▷빌보드 1위와 세계적 브랜드 획득 등으로 정리했다.

“다이나믹 코리아를 가장 잘 보여준 게 K-팝이다. 위기가 왔을 때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 불법 복제로 국내 음악시장이 7분의 1로 쪼그라들며 붕괴 위기에 처했을 때,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해외에서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팬덤을 형성함으로써 스스로 우호적인 환경을 창조했다. K-팝은 곧 위기 극복의 역사다. 문화와 기술을 융합해서 문화를 산업화 시킨 게 주효했다.”

이 의장은 “아이돌을 공장에서 찍어낸다고 하는데, 미래에 통할 아이돌을 새로운 음악과 장르로 발전시킨 힘이 프로듀싱이다. 다양한 음악을 지속적으로 창조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투자의 위험이 있는 문화시장에서 지속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한류 3단계를 통해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낸 코리아 다이나미즘에 K-팝이라는 우리 문화산업이 있다”고 분석했다.

▶K-팝이 빠질 수 있는 ‘이카루스 패러독스’=하지만 K팝에도 성공 함정이 있다. ‘이카루스의 역설’처럼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가 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대니 밀러 교수는 성공한 기업들이 걷는 4가지 성장 궤도를 ▷개척자형 ▷장인형 ▷마케팅형 ▷건설가형 등으로 나눴다. 이 의장은 K팝은 개척자형에 속하는데, 여기서 빠질 수 있는 함정은 ‘발명형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을 강조하다 보니 내부에는 강력한 개발 드라이브가 걸려 있다. 지나치면 개발 지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많은 제작자가 ‘콘텐츠만 우수하면 시장은 열린다’는 신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 흐름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과도한 개발 투자로 아까운 자원을 낭비하기 쉽다. 혁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재무적 통제나 위험 관리 없는 개발을 감행하고, 그 결과 실패의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이 의장은 K팝이 속한 개척자형의 극복 전략으로 ▷틈새시장 개척 전략 ▷시장 확장전략 ▷정면돌파 전략 등을 적절히 구사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K-팝은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시장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마케팅에 집중하면서 내부 혁신 속도를 조절하고,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 개발과 음악 차별화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도전할 시장의 수익성과 위험을 정확히 평가해 합리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콘텐츠 개발과 혁신을 추구하되 마케팅과 재무적 통제를 전제로 해야 한다. 한마디로 합리적으로 통제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문화산업 혁신의 주체는 민간·개인이 돼야=K-팝 이노베이션은 국가 정책이 아니라 혁신가의 꿈과 열정으로부터 출발했다. 따라서 이 의장은 K-팝 등 문화산업 성장의 주체가 기업이나 정부, 국가에서 민간과 개인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K-팝은 반도체와 휴대폰처럼 하나의 상품으로서, 세계 팝 시장을 상대로 창출해낸 혁신의 결과물이다. 그 혁신은 이수만·방시혁 등 프로듀서 혁신가들이 위험을 감수, 주도함으로써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된 것이다. 이 의장은 “K-팝은 혁신 모멘텀을 작동시키는 혁신가의 꿈과 의지가 중요한 만큼 창의적 개인이 혁신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 지금은 개인 혁신가 시대다. 직장인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퇴사함으로써 이직이 경력 관리가 되는 ‘대(大) 퇴사시대(the Great Regression)’ 에는 기업 조직에서 일생을 보낼 수 없다. 대안이 있어야 한다.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 아이돌 등 혁신 주체로 개인이 나서는 시대에는 정치가 장애가 된다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동시에 세계 엔터산업은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메타버스를 주도하는 K-팝이 한류의 미래가 될 것이다. K-팝 한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더욱 발전할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이 한류의 정점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과거에 없던 K-팝 장르로 위기를 극복했듯 또다른 혁신의 모멘텀은 K-팝을 미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명실상부한 퍼스트 무버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의장은 혁신 및 전략과 기업가 정신을 연구한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 기업 경영방식의 역사를 정리한 ‘창발경영’은 최근 중국에서 출간됐다. ‘삼성웨이’에 이어 7년 만에 중국에서 발행된 한국 경영서다. 이 의장의 문화산업의 탁견이 녹아있는 ‘K팝 이노베이션’의 영문판도 곧 나온다.

이 의장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 동반성장위원,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2014년에는 지방대 교수로는 한국경영학회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경영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현재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 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외에도, 사회적 혁신으로 확장시켜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신(新) 국가의 심장’이 필요한 때=이 의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혁신을 꿈꾸고 있다. 국가의 심장으로 표현될만한 핵심 동력은 한번 성공했다고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다. 저성장과 저출산 시대에는 지속가능성의 위기가 찾아오기 쉽다. 이 의장은 혁신 자문, 정책, 기술, 문화를 융합한 지식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13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한 집필을 하고 있는데, 글을 모아보니 창의적인 개인이라는 혁신 주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국가 개조 수준의 변혁으로 요약됐다. ‘국가의 심장’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그 후 ‘심장 갈아끼우기’에 실패해 잃어버린 30년의 추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1910년대만 해도 영국 수준의 경제강국이었지만, 미국발 경제 공황의 충격을 수습하지 못해 빈국으로 추락하면서 정치 포퓰리즘에 빠져있다. 반면 미국은 대공황에 맞서 뉴딜 정책을 편 루즈벨트와 규제 완화를 통해 창업과 혁신을 다시 미국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게 한 레이거니즘 등 2차례 심장 교체작업을 해냈기에 세계 강국을 유지하고 있다.”

이 의장은 “우리도 혁신 동력은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제도와 법, 정치, 한마디로 국가심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 위기의 압력이 가해지면, 우리 제조업은 더욱 힘들어진다”면서 “우리의 혁신 주체들을 잘 활용하면 성공하지만 못하면 실패한다. 혁신의 혈액이 돌게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낳은 첫 번째 심장에서 두 번째 심장으로의 대전환은 또 한번의 코리아 다이나미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