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 현수막. 연합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 현수막. 연합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그날 그 글을 다 쓰고 밤에 죽을 작정이었다.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병원에서 떨어지고 싶었는데 그곳은 명색이 병원이라 못 떨어지게 대비를 많이 해뒀다. 내 두부 외상을 보고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게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떨어져야겠다 싶어서 미국에서 쓰레기봉투로 쓴다는 두껍고 튼튼한 검은 비닐봉지도 구입했다. 남은 일은 왜 죽는지 구구절절 정당화하는 일종의 보고서에 가까운 편지였다.”

신촌의 한 대형병원 7년차 간호사인 김수련씨가 실명을 걸고 태움의 고질적 병폐를 밝힌 ‘밑바닥에서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글항아리)을 펴냈다.

신규 간호사 시절, 그는 버거운 업무와 실수, 오류, 무시와 막말, 폭력으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숨쉬는 것조차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어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아 거리에서 자신의 뺨을 때렸다.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았다. 몸과 영혼은 분리된 채 밑바닥의 자신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봤다.

그래도 몸이 스스로 살겠다고 애써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차지 간호사는 머리를 발로 밟아 물속으로 다시 처넣었다.

상대는 보호자와 레지던트 앞에서 목덜미를 붙잡아 끌고 다니며 “얘가 잘 몰라서 그래요”라며 망신을 주고 줄줄 새는 투석액 백을 캐비닛 안에 던져 놓았다. 맞는 답을 했는데도 얘는 공부도 안한다며 부서 중앙에 세워 놓고 소리를 지르고, 결막염에 걸리자 꾀병이라고 소문을 내고 리넨 장으로 끌고 가 밀쳐 놓고 없는 사람 취급하겠다고 을러대기도 했다.

환자 드레싱을 붙인 지 사흘이 넘었다며 떼어서 그의 팔에 붙이고 환자 기관절개관 튜브를 환자 방밖에서 세척했다고 등짝을 때렸다.

정맥주사를 놓는 데 실패하자 그 신규의 팔을 잡고 정맥주사용 바늘을 팔에 꽂기도 했다.

저자는 괴롭히던 이들의 순수한 악을 길게 나열하진 않는다.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 고통의 심연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게 겁나고 들어갔다간 계속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

한편으론 어떤 부분은 이해한다. 그들 대부분도 중환자실 업무의 숨막히는 버거움과 그 버거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내력이 모자랐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간호사의 영혼을 말리는 중환자실의 매일의 업무를 소상하게 들려준다.

간호사들의 근무는 3교대로 이뤄진다. 데이 출근날이면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신규 때는 밤새 얕게 잠들거나 아예 잠을 못잤다. 병원에 도착하면 4시, 전산을 보며 환자의 병력과 현 상태를 살피고 적는다. 5시에 병동에 들어가 야간 근무자들과 교체하고 물건 개수를 처치 개수와 대조해 센다. 물건은 종종 개수가 안맞는다. 레지던트가 얼떨결에 쓰레기통에 버린 1700원짜리 가위를 찾느라 똥 묻는 기저귀와 가래 묻은 휴지가 뒤섞인 쓰레기통을 뒤진다. 6시 전 인계를 받는데 너무 빨리 진행돼 놓치곤 한다.

인계가 끝나면 환자상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인한다, 약물의 잔여량, 배액관, 카테터, 환자의 피부와 가래상태, 인공호흡기 투석기 투여량, 체온계의 배터리 등을 점검하는데 이 중 하나는 꼭 문제가 생긴다. 그걸 놓치면 뒷일이 줄지어 꼬인다. 투약, 환자 체위 변경, 구강 간호, 석션, 검체검사, 처방 처리 등 일의 목록은 줄줄이다. 그 와중에 보호자들의 전화에 응대해야 한다. 검체검사 결과 이상이 있으면 레지던트에게 전화해 알려야 하지만 그들은 종종 전화를 안 받거나 통화 도중 끊어 빚쟁이처럼 레지던트를 따라다녀야 한다.

수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게 꼬인다. 수많은 펌프를 꽂을 전원이 부족한데 잠깐 미루면 배터리 알람이 울리고 환자가 기침했는데 걸려온 전화를 먼저 받으면 인공 호흡기 서킷이 가래로 더러워지고 투석액에 넣을 전해질을 섞는 동안 다른 환자를 재우는 약이 다 닳았다는 알람이 울려대는 등 너무 많은 일에 짓눌려 실수를 하게 되고 인계는 엉망이 된다. 그런 자신의 실수를 매일 확인하면서 자기비하는 당연한 게 된다.

그는 내일의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버텨냈다. 그런 막다른 길에서 그는 친구의 진심 어린 편지와 달달한 브라우니 선물을 받고, 조금씩 정신을 차리게 된다.

저자는 자신도 죽음으로 태움을 고발한, 그 1년 전의 박선욱 간호사였다고 말한다.

그는 간호사들의 프리셉터-프리셉티 교육제도와 인력 부족 등 의료계 고질적인 문제도 짚는다.

암병동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7년간 근무한 그는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파견 인력으로 미국 적십자 재난 의료팀에서 활동중이며 뉴욕 시립병원외과계 외상 중환자실에서 근무중이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