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낙서 수집광(윤성근 지음, 이야기장사)=손님이 책을 찾아달라고 의뢰하면 전국 방방곡곡 수배해 책을 찾아주는 책탐정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인 윤성근씨다. 그는 15년째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낙서책’‘흔적책’을 수집하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 책에 손글씨나 낙서를 남긴 책, 좋은 문장에 밑줄을 그어 두었거나 누군가에게 애틋한 편지를 쓴 책들이 대상이다. 그는 헌 책 한 장 한장을 조심스레 펼치며 흔적을 찾던 중 ‘타인최면술’이란 책에서 섬뜩한 낙서를 발견한다. ‘김○○ 부장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김 부장을 형상화한 듯한 ‘엎드려뻗쳐’한 사람의 그림 곁에 ‘殺(살)’이란 글자도 보인다. 김 부장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2007년 문을 연 헌 책방에는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온다. 헌 책을 팔고 갔는데 책 속에 끼워 둔 비상금이 생각나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300권의 책을 팔았던 어떤 손님은 책 속에 끼워둔 네잎클로버를 찾겠다고 다시 왔다.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적어 넣은 이도 있다. 1999년 어느 날 ‘한 세기가 저물어가는 막막한 기분을 느끼며’ 누군가의 엄마는 기형도의 유고 시집 시 한 켠에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빽빽이 적었다.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다른 종이에 써서 시 위에 붙였다.‘인생은 한 잔의 One black coffee라고 생각됩니다’는 애정 고백도 있다. 매일 사랑의 일기를 써내려간 시집, 6년에 걸쳐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마치 교환일기를 주고 받듯 남긴 짤막한 메시지도 책탐정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삶의 흔적이 살아있는 헌 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하야테노 글· 그림,김다미 옮김,비채)=동네 문구점이 무인 문구점으로 바뀌고, 그나마 있는 곳도 완구 자판기나 이용하는 정도로 쪼그라드는 요즘이지만 도쿄에는 특별한 노포 문구점들이 많은 모양이다. 문구 마니아 일러스트레이터 하야테노 고지가 덕심을 담아 쓰고 그린 ‘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에 등장하는 도쿄의 매력적인 문구점 80곳에는 독특한 문구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가 긴자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들른다는 이토야 문구전문점은 1904년 창립,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지하 1층부터 12층까지 각종 문구와 귀여운 오브제, 아름다운 종이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이곳에는 경치 좋은 카페 레스토랑과 스마트팜도 즐길 수 있다. 3대를 이어가는 노포 겟코소 화재점은 미술용품과 문구를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며, 도쿄 역 앞 역사적인 우편국 자리에 있는 레트로 감성의 안제 뷰로는 앤티크 필기구, 가죽 소품, 카메라, 시계 등 덕후들을 들뜨게 하는 아이템들이 많다. 유럽의 역 구내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노이슈터트 브루더, 애호가가 많은 트래블러스 팩토리 스테이션, 롤반 굿즈가 가득한 스미스 루미네, 고양이 굿즈로 유명한 1887년 진보초에 문을 연 분포도 간다점 등은 트렌디하다. 수동식 활판인쇄를 무료체험할 수 있는 진보초의 프라이마트, 옛 공산주의국가 굿즈가 가득한 빈티지 문구 보물상자인 야나카의 잡화점 비스킷, 작가가 애용한 원고지가 있는 가구라자카 최고참 문구점 소마야 겐시로 상점도 눈길을 끈다.책은 특별한 아이템과 동네 지도, 주변 볼거리까지 일러스트로 보기 좋게 정리해 놓았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길보라 지음, 창비)=“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코다 이길보라 영화감독이 지겨울 정도로 듣는 질문이다. 상대방의 눈빛과 분위기로 그는 장애인과 그의 가정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감지한다. 그러면 그는 보다 활달한 목소리로 “부모님은 농인이고, 나는 그의 자녀인 코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여느 인생과 마찬가지라고. 어려운 일만 있는 건 아니며, 기쁘고 가슴 벅찰 때도, 화가 나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로 잘 알려진 작가는 이번 신작 에세이에서 그가 늘 그래왔듯 두 세계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며, 또 하나의 공감의 다리를 놓는다. 농인 엄마와 나의 운전배우기, 농인 아빠와 함께 농인의 천국이라 불리는 워싱턴 D.C. 갤로뎃 대학에서의 놀라운 경험, 네덜란드 유학시절 파트너의 우울증과 자해 등을 통해 그는 장애와 질병이 부끄러워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말함으로써 연대와 치유가 가능함을 역설한다. 저자는 영화와 책 등 좋은 작품들이 세상을 확장하는 창이 됐다며, 그가 만난 작품들을 들려준다. 장애운동가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크립 캠프:장애는 없다’, 말하고 듣고,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하얀새’, 당사자성의 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리틀 팔레스타인, 포위된 나날들’, 도시 인구의 25명 중 1명이 농인인 마서스비니어드섬에 관한 책들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시야를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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