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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5년 전, 지하철 광고에 ‘성폭행을 무죄로 이끌겠다’는 한 법무법인의 광고가 등장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엔 연예인 성폭력 사건이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고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일이 흔했다. 법무법인들은 앞다퉈 성범죄 무고 전담, 무혐의 전담 변호사를 확보했다며 온라인 광고를 벌였다. 성폭력 가해자 변호 시장은 한 마디로 돈이 되는 장사였다.

2016년부터 한국성폭력상담연구소 부설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한 김보화 씨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당시 박 모 유명 연예인에 의해 무고로 고소된 ‘피해자’가 징역 2년의 실형 선고를 받은 일을 상기시키며, 가해자의 무고죄, 역고소 남발과 성범죄가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지 가해자 지원 시장과 산업, 시스템을 고발한다.

한 예로 성매매 알선, 성매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상습 도박 등 9개 혐의에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버닝썬 사건의 중심 인물 승리는 징역 3년 형을 받았지만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여기에는 최고의 성범죄 전담 법인의 패키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감형 사유인 ‘진지한 반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 봉사단체나 여성 단체 등에 후원금을 기부하고 지인들의 탄원서, 반성문, 근절 서약서 등을 제공한다. 방문이나 상담 없이 기계적으로 만들어지는 감형 컨설팅 업체가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도 온라인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롯, 피해자 가족 및 지인을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하기도 한다. 이는 피해자의 의지를 꺾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뒤바꿔버린다. 피해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자원과 역량을 소모하게 된다. 성범죄 재판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게 아니라 자본에 따라 움직일 공산이 커진 것이다.

이 시장은 2010년대 중반부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 몇몇 법인은 전직 대법관, 부장 판검사를 자문 위원으로 임명, 한 달 홍보 비로 1억 원 이상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과정은 피해를 재차 경험하는 고통이다. 왜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의심 받게 되고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다움을 일관되게 보여줘야 한다. 성폭력 담론과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저자는 피해자와 활동가, 변호사를 심층 인터뷰해 피해자의 고통이 고려되지 않고 가해자와 자원을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김보화 지음/휴머니스트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