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분양단가 10%이던 순이익…최근들어 5%대로 줄어”
시행사들 “민간 PF 활성화 돼야”
리스크 줄여나가는 시공사들도 시행사 발주 물량 꺼려
“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도”
[헤럴드경제=서영상·고은결·서경원 기자] 시행사들이 현재 겪는 위기의 본질은 개발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까지 상황이 나빠졌다는 데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브리지 대출의 축소로 자금조달이 어려운 것은 물론 돈을 끌어온다 해도 급등한 금리 탓에 금융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여기에 인건비, 원자재 가격 등의 상승으로 공사비가 커진 것은 물론, 시공사들이 최근 시행사 물량 수주를 꺼리는 등 사업 자체가 진행이 안 되는 현실도 시행사들의 고사 위기를 키우고 있다.
한 시행사 대표는 “과거 시행사들이 총 분양단가의 10%를 순이익으로 집계했다면 최근 금융비용이 올라 5~6%로 추산한다”며 “미분양 또는 할인 분양 때는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작은 비율만 손해가 나도 수십억의 빚을 떠안아야 하는 현 상황에서 누가 사업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꽉 막힌 민간 PF 조속히 활성화 돼야=업계에서는 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큰 해결책으로 민간 PF의 활성화를 꼽는다. 정부는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주택금융공사(HF)를 통해 올해까지 (공공)PF 대출 보증 규모를 5조원씩 총 1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했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분위기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건전한 사업장의 가이드를 정해주고 해당 사업장이라도 민간 PF를 할 수 있게 시그널을 주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현재는 유동성 위기의 홍역을 앓은 증권사들이 선뜻 PF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특히 중소형사들은 이미 고위험 중·후순위 PF 딜이 많았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리스크 수위의 한계 수준에 달한 모습이다. 그나마 자본력에 여유가 있는 대형사들 정도만 협업 방식으로 투자 기회를 모색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부실 부동산PF 사업장을 정상화하는 부실채권펀드(NPL) 조성을 대형 건설사와 준비 중이다. 주로 본 PF로 넘어가지 못한 브리지론 단계의 사업장이 그 대상이다. 금리 급등과 공사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 중 사업성이 있는 곳을 선별해 구조조정처럼 회생시키는 것이 펀드의 골자다.
KB증권은 하반기 이후 만기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프로젝트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반기에 2000억∼30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 메리츠증권은 롯데건설과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롯데건설이 보증하는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하는 투자로, 메리츠금융그룹 계열사가 9000억원 규모로 선순위 대출에 나서는 게 골자다.
▶힘들게 돈 모아도 시공사들이 시행사 발주 현장은 꺼려=시행사들이 직면한 현 위기는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평가된다. 급격한 금리 상승 속에 원자재와 인건비가 일제히 오르는데 주택 경기는 최악이라 분양가 조정이 불가피하다. 갈수록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신규 사업 추진은 커녕 기존 공사도 멈출 판이다.
이에 시행사들의 원활한 사업을 위해서는 금융사 못지않게 직접 공사를 진행해 나가는 시공사들과의 관계 또한 중요한 시점이다.
통상 시행사들은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 본인의 신용만으로 대출이 불가능해 시공사의 신용을 끌어다 쓰는데 최근 들어 시공사들은 ‘신용공여’의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설사 금융 투자단이 구성되더라도 시공사들이 분양성을 장담하지 못해 자체 투자 심사조차 열지 않는 상황이다.
또 시공사들이 공사비 확정을 해주지 않는 사업장은 수주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도 시행사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경기가 좋을 때는 시공사들이 수주에 나서며 분양률에 따라 공사비를 지급받기로 약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분양률과 상관없이 총공사비 대금을 약속받아야 수주에 나서는 현실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같은 분양시장 침체 상황에서 공사비를 떼이는 것은 시공사로서도 최악의 상황”이라며 “도시정비 사업의 경우 조합원들이 많아 분양의 위험성이 덜한 만큼, 시행사 발주(물량)보다는 정비사업 발주를 선호하게 된다”고 했다.
▶“5~10년 뒤 주택 공급 부족 사태 겪을 것”=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위기가 길어지면 ‘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가 2027년까지 270만가구 공급(인허가 기준)을 목표로 규제를 풀고 있지만, 현재의 공급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주택 특성상 택지 확보부터 준공까지 수년 이상 걸려, 즉각적인 공급 확대도 여의찮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경기가 나아지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집값이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사업 주체 입장에선 정책 지원이나 금리 안정 전까지 원활한 공급이 어렵다”며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5~10년 뒤에는 공급이 줄어 주택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과거 외환위기, 금융위기 이후에도 집값이 폭락한 이후, (공급 부족에) 다시 엄청나게 오르는 경험을 했는데 반복될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주택 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된 만큼, 수요·공급 불균형에 집값 양극화가 심해질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2%다. 반면 서울 주택보급률은 94.2%, 수도권은 96.8%로 100%를 밑돈다.
공급 위기 대응에 관한 의견은 다양하다. 우선 시행사의 택지 매입과 인허가 절차까지는 보장돼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주택 공급 과정은 통상 택지 매입, 인·허가, 착공 및 분양, 준공 및 입주 순으로 이뤄진다.
김덕례 실장은 “대구처럼 입주물량이 쌓인 지역에선 착공·분양 시기를 재검토하는 것도 맞다”면서도 “다만 택지 확보, 인허가 절차까지는 차질 없이 이뤄져야 큰 틀에서 공급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옥석 가리기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업성이 있으면 적절한 유동성 공급으로 파산을 막아야겠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있다”며 “금융권의 옥석 가리기, 사업 주체의 구조조정 등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