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오프라인 대면 공연
이틀 동안 전 세계 2만 관객 모여
공연장 앞부터 블랙과 핑크 향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블링크, 우리 멋있죠?” (리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걸그룹’의 위상을 완벽하게 입증한 무대였다. 블랙핑크는 명실상부 ‘아이콘’이었다. 공연장 앞은 블랙과 핑크의 천국이었고,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블링크’들이 블랙핑크에게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공연장을 찾았다.
블랙핑크는 K팝 걸그룹 중에서도 최강의 ‘여덕 몰이’ 주역이다. “사랑스럽고 예쁜 외모”, “트렌디한 스타일”, “당당한 노랫말”은 여성팬들이 블랙핑크를 사랑하는 이유다. 이날 공연장엔 여성 블링크 못지 않게 상당수 남성 블링크들이 자리한 점도 이색적이었다. 심지어 블랙과 핑크로 맞춰입고 응원봉까지 들고 사진을 찍는 국적 초월의 남성팬이 절반을 차지했다. 공연에서 만난 김현민(24) 씨는 “2019년부터 블랙핑크의 팬이 됐다”며 “공연장에 오는데 블랙과 핑크로 입고 오는 것이 예의”라고 말했다. 공연장에선 건장한 남성팬들이 “블랙핑크, 사랑해”를 연호했고, 남녀가 어우러진 함성의 질감은 여느 K팝 그룹의 콘서트와는 다른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블랙핑크가 15~16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 돔(KSPO DOME, 옛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투어 ’본 핑크‘ 서울(BLACKPINK WORLD TOUR [BORN PINK] SEOUL)’ 공연을 통해 전 세계 팬들과 만났다.
월드투어의 서막을 알리는 출발지이자, 4년 만에 열리는 블랙핑크의 대면 공연엔 영국, 프랑스,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은 물론 전국에서 올라온 1만 명의 팬들로 가득 찼다. 이틀간의 공연에 모인 관객은 2만 명이었다. YG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안전을 고려해 전체 수용 인원보다 1만 명 가량 적은 2만 명 규모의 관객만 받아 공연을 열었다.
영국에서 온 트웨인(28) “3년 전부터 블랙핑크의 팬이 돼 오늘 공연까지 오게 됐다”며 “유럽에서의 투어도 예정돼있지만, 어제 방탄소년단의 부산 콘서트와 함께 블랙핑크의 콘서트 티켓도 어렵게 예매에 성공해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차원이 다른 사운드와 무대 연출…YG·블랙핑크 역량 입증
이틀간 이어진 서울 콘서트는 YG의 ‘라이브 공연 노하우’와 K팝 그룹 블랙핑크의 역량을 볼 수 있는 무대였다. 뛰어난 연출과 귀에 거슬림이 없는 완성도 높은 사운드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대 디자인도 세련되고 우아했다. 멤버들의 화려한 외모와 의상을 더 부각하는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이번 블랙핑크의 콘서트는 지난 9월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앨범 ‘본 핑크’의 타이틀처럼 ‘사랑스럽고 강렬한’ 블랙핑크의 정체성을 담아낸 공연이다.
공연은 당초 오후 5시 시작 예정이었으나, 관객이 모두 입장할 때가지 기다린 후 13분이 지나서야 조명이 켜졌다.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의 뮤직비디오가 무대를 가득 메운 세 개의 대형 LED 전광판을 가득 채우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블랙핑크는 5시 15분 등장해 ‘하우 유 라이크 댓’으로 월드투어의 서막을 열었다. 첫 곡에 이어 ‘프리티 새비지(Pretty Savage)’, ‘휘파람’까지 파워풀하고 복잡한 안무가 지치지 않고 이어졌다. 무대 세트는 초자연부터 우주, 사이버 공간까지 떠올리게 했다.
첫 곡을 마치고 리사는 “어제 엄청 떨려 멤버들과 오늘 공연은 잘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오니 엄청 떨린다”고 말했다. 로제는 “어제 보던 얼굴도 보이고. 새로운 블링크도 보인다”며 “어제와 다르게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너무너무 기대된다”고 했다.
이어진 곡에선 댄서 없이 네 사람만이 무대를 꽉 채웠다. 격렬한 안무 대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곡들이다. ‘돈트 노우 왓 투 두Don‘t Know What to do)’를 통해 관객들의 함성과 떼창을 유도했고, ‘러브식 걸스(Lovesick Girls)’로 한 번 더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 곡들을 소화할 때 블랙핑크는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와 더 가까이에서 ‘블링크’와 만났다.
노래를 마친 블랭핑크가 리프트를 타고 무대 아래로 사라졌고, 화면엔 네 멤버 각각의 매력을 담아낸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은 제법 길었다. 무대마다 새로운 의상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어 2019년 4월 공개,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 조회수만 20억뷰를 기록 중인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가 시작됐다. 노래와 함께 멤버들이 나올 때 무대는 구조를 바꿔 화살표 모양으로 상승했다. ‘크레이지 오버 유(Crazy Over You)’ 무대에선 라이브 밴드가 함께 했다. 다년간의 공연 무대를 통해 쌓아온 YG의 사운드 구현 능력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밴드의 짱짱한 소리에도 흔들림 없는 멤버들의 가창력이 돋보였다.
이번 케이스포 돔에서의 공연은 스탠딩 좌석을 두지 않았다. 지수는 ‘조련의 달인’이었다. ‘텔리(Tally)’ 무대에 앞서 “근데 블링크 일어나고 싶은가봐”라며 “용감한 블링크 한 명이 모두를 일으켜 세운다. 눈치 보지 말라. 저희가 지켜보겠다”라고 말하자, 1만 명의 관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장은 진풍경도 연출됐다. 한 손에는 응원봉, 한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블랙핑크의 모습을 담으려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 어떤 모습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였다. 제니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여러분, 집에 가면 영상 다 올라온다”며 “오늘은 핸드폰 내려놓고, 같이 즐기자. 블링크 얼굴 보고 싶은데, 핸드폰이랑 콘서트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수가 블링크를 일으켜 세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음 곡을 시작하며 제니는 “이 노래 알죠?”, “춤 출 시간이 왔다”고 예고했다. 돌출 무대 앞에서 조명 타워가 내려오며 ‘핑크 베놈’이 시작됐다. 공개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이 곡은 객석의 떼창 포인트이기도 했다. 노래 중간 나오는 ‘워워워’, ‘아아아’ 구간에선 떠나갈 듯한 함성이 나왔다. 노래를 마치고 YGX 댄서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화면을 채우고, 이들의 댄스 브레이크 시간이 이어졌다.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며 개인 연주를 보여주는 장면도 기존 K팝 그룹의 공연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 제니, 미공개 솔로곡 공개…눈물 글썽인 로제
공연의 절반이 지난 뒤엔 멤버들의 개인 무대를 볼 수 있던 것은 팬들에겐 선물이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문다빈(25) 씨는 “이번 공연에선 특히 멤버 한 명 한 명의 솔로 무대와 새로운 커버가 있다고 해서 기대가 더욱 컸다”고 말했다.
첫 주자는 지수였다. 이날 지수는 새빨간 의상을 차려 입고, 카밀라 카베요의 ‘라이어(Liar)’ 무대를 선보였다. 제니는 공연에서 미공개 신곡을 불렀다. 무대는 ‘달빛 아래서 춤춰봐’(Dancing in the moonlight)라는 노래 가사처럼 하늘 아래 떠오른 달 아래서 아름다운 춤과 노래를 이어갔다. 특히 제니와 남자 댄서가 실루엣만을 보여주며 춤추는 장면은 이 곡의 하이라이트였다. 노래는 모두 영어가사로만 돼있었다. 한 번만 들어도 잊히지 않는 멜로디가 이어지다, 곡 후반부 반전 매력이 돋보인 다이내믹한 곡 구성도 매력적이다. 노래를 마친 뒤 제니는 “미공개곡인데,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선곡했다”며 “마지막에 손동작 퍼포먼스가 있는데, 이 스토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메인 보컬 로제는 ‘본 핑크’ 앨범에 수록한 ‘하드 투 러브’(Hard to love)와 ‘온 더 그라운드’(On the Ground)로 감미로운 음색을 선보였다. 솔로 무대의 대미를 장식한 리사는 자신의 솔로곡인 ‘라리사(Lalisa)’와 ‘머니(Money)’를 선보였다. 리사는 자타공인 블랙핑크는 물론 K팝 걸그룹 최고의 댄서답게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리사를 만나러 온 태국 팬들도 적지 않았다. 공연장에서 만난 닉(30)은 “리사는 태국 사람들이 정말 사랑하는 K팝 가수”라며 “리사를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사는 귀엽고, 댄스 퍼포먼스가 너무나 멋지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솔로 무대에 이어 파가니니의 ‘캄파넬라’를 샘플링한 ‘셧 다운‘(Shut Down)’이 나오자 관객들은 떠나갈 듯한 함성과 함께 스탠딩 모드로 돌입했다. 이어 “이 노래 아는 사람? 따라불러”라는 말과 함께 ‘타이파 걸(Typa Girl)’을 들려줬다.
블랙핑크의 메가 히트곡 중 하나인 ‘뚜두뚜두’와 ‘포에버 영(Forever Young)’은 대미를 장식한 곡이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 아니었다. 무대를 마친 블랙핑크가 떠나자 객석에선 ‘앙코르’와 함께 떼창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블랙핑크의 ‘스테이’(Stay) 가사를 합창하며 블랙핑크를 재소환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블랙핑크는 그룹의 데뷔곡인 ‘붐바야’로 문을 열었다. 앙코르 무대에서 영상은 멤버들과 객석을 함께 비췄고, 지수는 스탠딩으로 공연을 즐기는 블링크들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았다. ‘붐바야’로 멤버들이 음악에 맞춰 무대 위를 뛰어다닐 땐 객석에서도 뛰어 케이스포돔의 바닥 전체가 울렸다. 블랙핑크는 ‘예예예’, ‘마지막처럼’까지 부른 뒤 서울 콘서트를 마쳤다.
지수는 “원래 긴장을 잘 안하는데 너무 긴장되고 떨렸다”라며 “서울에서 시작하는 월드투어인 만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긴장이 많이 됐다. 오늘 이렇게 서서 응원해준 블링크, 너무 감사하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리사는 “우리 블랙핑크 멤버들 사랑한다”며 “바쁘게 활동하면서 아프고 잠도 못자고 준비했는데, 잘 마무리해줘 고맙고 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예쁜 핑크색 바다로 꾸며주는 블링크, 우리 오래오래 같이 함께 하자”고 말했다.
제니는 “서울 콘서트를 마무리하는 날인데, 느낌이 오늘도 내일도 할 것 같다. 이제 막 몸이 풀렸다. 이틀 내내 응원해준 블링크 너무 고맙다”며 “삼개월 밤낮 없이 달렸는데 멤버들, 댄서 언니 오빠, 모든 스태프, 다 고생 많았다. 투어 잘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로제는 “뭔가 다섯 번은 더 해야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이 하고,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서 “무대를 쉬는 동안 깨달았다. 블랙핑크로 무대를 하는 것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며 “설레는 맘으로 준비했지만, 한없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이렇게 좋아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월드투어도 멋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콘서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블랙핑크는 오는 25일부터 북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향해 역대 K팝 걸그룹 최대 규모의 150만 명 관객을 동원하는 월드투어를 시작한다.
캐나다에서 블랙핑크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온 케일리(24)는 “북미 공연의 첫 번째 장소인 댈러스에도 블랙핑크를 보러간다”며 “블랙핑크는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멋지고 카리스마가 있는 그룹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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