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美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서명 이후 글로벌 공급망 개편에 관한 우려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에 우리뿐만 아니라 EU와 일본 등도 미국 내 전기차 판매 감소를 우려하며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미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최근 급속히 개편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에 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우선, 글로벌 공급망이란 간단히 말해 생산과정의 국제적 분업체계를 의미한다. 분업을 통한 생산의 효율화는 오랫동안 제품 가격 하락 등의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으나,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심화시키거나 분업을 통한 이익이 특정 국가로 집중되는 등의 부작용도 함께 낳았다. 그러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에서 생산이 중단되고 물류가 마비되면서, 효율성 관점에서 구축되어 온 기존 공급망이 위기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공급망의 안정성과 복원력이 강조되며 기존 공급망을 자국 또는 인근 국가로 복귀시키거나 다각화하는 방식으로 개편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에 더해 최근에는 공급망 개편 과정에서 안보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 간의 협력을 의미하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부각된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비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 개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주(主)가 되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대다수 국가는 글로벌 공급망을 양분하는 미국과 중국 간의 파워 게임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공급망 개편 과정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은 꼭 필요하다.
먼저 첨단산업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첨단산업의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곧이어 국가 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와 같은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화하고 인재 양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또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나 Chip4 동맹과 같은 경제협력체는 첨단산업에서 미래 세계 경제를 끌어나갈 하나의 축인 만큼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국가와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는 공급망 관련 민간 부문의 애로사항 해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잘 갖춰진 정부 조직이라도 산업별, 기업별로 촘촘히 구성된 공급망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공급망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민간 부문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그들의 애로사항을 수시로 접수하고 반영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엔 공급망과 관련된 민간 부문의 고충을 전문으로 하는 글로벌공급망 옴부즈맨(가칭) 제도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우리는 이미 중소기업, 외국인 투자 부문 등에서 이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중심의 공급망 개편 흐름을 일부에서는 과거 미·소 간 냉전에 비교하기도 한다. 글로벌 공급망 개편이 짧은 시간 내에 완료되기는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현재과 정이 미래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기회라는 생각으로 핵심 전략기술·산업에 대한 주요국 동향을 보다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준비해 나가자.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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