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느리게 쓰는 작가입니다. 저널리스트처럼 수 백 명을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연구하면서 쓰죠. ‘파친코’를 쓰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재일한국인들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소설 작가 이민진이 새로운 번역본 출간과 관련, 8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모든 독자를 한국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작가적 바램을 내비쳤다.
톨스토이를 읽을 때 러시아인이 되고, 찰스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인이, 헤밍웨이를 읽을 때는 “미친 미국 남자”가 되듯, 모든 독자가 한국인이 돼서 한국인의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는 최근 미국에서 한국인 작가들의 작품이 주목 받고 있는 데 대해 한류의 영향이 크다고 밝혔다.
“정부에서 소프트 파워를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걸 알고 있고 있다. 또한 수많은 작가와 감독, 배우, 가수, 아트에 종사하는 분들이 희생하고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며,이런 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독자 저변이 형성된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파친코’는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미국 주류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33개국에 수출되는 성가를 올렸다.
이 작가는 “2017년 처음 출간했을 때 피츠버그 카네기홀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2000명이 모였는데 99%가 백인,흑인이었다.”며, 그 이유로 자신의 작품이 19세기 영미문학 스타일을 구사한 데 있다고 봤다. 즉 전지적 작가 시점과 현실 비판적인 사회소설에 익숙한 유럽, 미국 독자들이 호응한 것이란 분석이다.
출간 초기에는 한국 독자들이 없어서 걱정했다는 그는 “요즘에는 ‘이 책 읽고 나니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한국인인 게 자랑스럽다’는 편지를 받는다”며 한국인 독자가 많아져 보람차다고 말했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90년대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책을 쓴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당초 그는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간 질환을 앓고 있었던 그는 변호사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에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파친코’ 구상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19살 대학생 때 강의를 빼먹고 친구와 특강을 들으러 갔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가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강의였다. 당시 들었던 13세 자이니치 소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신부의 교구 신자였던 그 소년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김치 냄새가 난다”“죽어,죽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소년의 죽음은 작가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작가는 애초 이 얘기를 ‘모국’이란 작품으로 완성했지만, 일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하면서 초고를 버리고 새로 쓰기 시작했다. 당시 원고 일부는 ‘파친코’의 한 장으로 들어가 있다.
작가는 ‘철지난 뿌리의식’이란 지적에 대해 남다른 견해를 밝혔다.
“요즘 젊은 세대편을 들고 싶다. MZ세대에 우리 사회가 충분한 존중을 보여주지 않고 있고, 이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역사를 모르면 빈 깡통과 같다. 역사적인 걸로 이들을 채워주고자 했다.”
이번 새로운 번역본 ‘파친코’에 대해 작가는 정확한 번역과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린 구성을 꼽았다.
그는 현재 쓰고 있는 작품 ‘아메리칸 학원’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한국 사람들이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학원을 통해 조명한 것이다. ‘파친코’가 그렇듯 한국말인 학원이 그대로 제목으로 쓰인다. “한국사람을 이해하려면 학원이란 말을 알아야죠.”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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