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 말하기 대회(김동식 지음, 요다)=“노후를 준비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젠, 사후를 준비할 시대입니다.” 왠지 익숙한 듯 솔깃한 멘트다. 지옥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남자, 그래서 헛되이 소비되는 잠자는 시간에 누구나 어차피 갈 지옥을 경험하면 죽어 지옥에 갔을 때 생전 체험한 시간만큼 차감해준다는 보험상품이다. 그럴싸하다. 데뷔작 ‘회색인간’으로 한국 문단에 충격을 준 김동식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이 연작소설은 TV 예능 ‘궤변 배틀’을 주제로 누가 궤변을 논리적으로 잘 포장하냐가 관전 포인트다. ‘궤변 말하기 대회’에는 매회 다양한 참가자들이 출현, 자신만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자는 동안 미리 지옥의 벌을 경험해 사후에 겪을 형벌을 탕감해 주는 ‘사후보장보험’을 파는 사람, 인류 멸망을 위해 계략을 꾸미는 인류멸망위원회 멤버, 외계의 휴양지인 지구를 더럽힌 인간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자까지 괴짜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황당하지만 일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대량 축산 시대의 동물권, 예술의 의미, 운명과 죽음, 언론과 정치 등 통념을 비틀고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흔든다. 별난 참가자들의 궤변은 소설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현실 세계를 새롭게 돌아보는 눈을 제공한다. “무엇이 궤변이고 무엇이 사실인지도 모르는, 성공한 궤변들의 세상을 살아가고”있다는 뒤집힌 세계 같은 것 말이다.

▶가려워서 미치겠어요(정진호 지음, 해냄출판사)=누구나 흔하게 겪는 피부 가려움증은 불편하지만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밤잠을 못 자게 할 정도라면 얘기는 다르다. 또한 수많은 질병의 초기 증상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전문의 정진호 교수는 “가려움증은 심각한 증상”이라며, 제대로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십 년 간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가려움증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에서 저자는 5단계 치료 원칙을 제안한다. 가려움증의 치료 원칙을 이해하고 철저히 실천하면 가려움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환자 스스로 원인을 찾는 게 우선이다. 원인을 모른 채 가려움증을 완화해 주는 약을 먹고 바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가려움은 크게 피부· 몸의 질환· 긁는 행위 자체가 문제인 경우 등 셋으로 분류한다. 피부 문제는 건조함이 주 원인. 건조 예방에는 때 밀지 않기, 비누 거품 오래 문지르지 않기, 고형 비누 대신 약산성 클렌저 사용, 샤워 횟수 줄이기, 실내 온도 20~22도 유지하기 등이 도움이 된다. 저자는 또한 꼭 필요한 약만 먹고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 복용을 중단할 것을 권한다. 특히 아무리 가려워도 1~2분 동안 긁지 않는 게 중요하다. 긁는 행위는 가려움증 유발물질과 염증 유발물질들이 피부세포로부터 분비돼 가려움증을 악화시키고 더 긁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정확한 원인 규명부터 증상별 치료와 예방까지 친절히 안내한다. 가려움증 원인을 찾아내는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도 수록했다.

▶굿바이 R(전경린 지음, 문학동네)=사랑의 본질과 속성, 이면을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탐색하고 그려온 작가, 전경린의 신작 소설집. ‘정념의 작가’라는 별칭 답게 정해진 틀을 벗어난 욕망과 자유로운 생을 노래했던 작가의 오랜 여정과 깊고 묵직해진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과거 작품 속 인물들이 옥죄는 현실 앞에서 혼자 훌쩍 떠나는 일탈을 선택했다면 이제 주인공들은 숨막힘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소설집을 여는 ‘승객’의 주인공 순례는 무감하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의 일상에 폐소공포증을 겪게 되고 결국 뛰쳐나가고 말지만 이제 누구나 지닌 불안과 허물을 이해할 줄 알게 된다. ‘막연한 각오’에선 선경이 아들, 조카와 함께 3박4일 홍콩 마카오 여행을 하며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표제작 ‘굿바이 R’은 작가가 그동안 그려낸 모든 여자의 모습이 R로 수렴되는 이야기다. 소설가 혜란은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 R에 대한 꿈에 시달린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발리에서 혜란은 아이를 잃은 뒤 전 남편을 찾아온 호연을 만난다. 호연의 전 남편을 함께 찾는 동안 혜란은 R이 호연을 포함해 그간 마주친 모든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혜란은 이제 R을 떠나보내려 한다. 폭풍의 계절을 지나 그 나이 때만이 알 수 있는 생의 진실을 단단해진 문체로 담아냈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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