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돌아온 뮤지컬의 전설

200여개 인형·가면…1만7000시간 완성

코끼리역 네 명의 배우가 다리 하나씩

3만4000시간 연습, 배우·인형 혼연일체

1억1000만명 관람 뮤지컬계 스테디셀러

무대 곳곳으로 아프리카를 담아낸 ‘라이온 킹’ [Joan Marcus, 디즈니 제공]
무대 곳곳으로 아프리카를 담아낸 ‘라이온 킹’ [Joan Marcus, 디즈니 제공]
왕의 자리를 노리는 심바의 삼촌인 스카 역을 맡은 안토니 로렌스(왼쪽)와 심바의 아버지인 무파사.
왕의 자리를 노리는 심바의 삼촌인 스카 역을 맡은 안토니 로렌스(왼쪽)와 심바의 아버지인 무파사.
‘코끼리의 무덤에서 아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알리는 첫 장면 ‘생명의 순환’.
‘코끼리의 무덤에서 아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알리는 첫 장면 ‘생명의 순환’.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광활한 사바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개코원숭이 주술사 라피키는 남부 아프리카 토착어인 줄루어로 ‘초원의 대서사시’를 시작한다. 익숙한 선율 위로 얹어진 주술사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 생명의 순환 : 뮤지컬 ‘라이온 킹’의 오프닝곡)를 부르면 초원의 무리들이 등장한다. 사바나를 날아오르는 가젤 무리,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는 기린. 발 빠른 표범이 맹렬히 뛰어다니고, 마른 나무 위로 하이에나가 은신하는 곳. 삶의 시작이자 죽음의 상징인 ‘코끼리의 무덤’에서 아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알리며 ‘생명의 순환’이 울려 퍼진다.

“‘서클 오브 라이프’는 삶과 죽음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많은 것들을 겪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순환은 세대를 거치며 이어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 생명이 성장하고, 조상이 되고, 후손을 맞으며 매일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을 이어나가는 의미를 담은 것이 바로 첫 장면이에요.”(푸티 무쏭고)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사바나의 ‘정신적 지주’인 주술사 라피키를 연기하는 푸티 무쏭고는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바나의 왕’이 돌아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 ‘라이온 킹’(3월 18일까지·예술의전당)은 199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21개국 100여개 도시에서 1억10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한국에선 2018~2019년 첫 내한 이후 3년 만에 다시 열린 세계 투어 공연이다.

무대는 황홀하다. 동물의 신체적 특징을 정교하게 구현한 퍼펫(꼭두각시 인형)은 눈을 뗄 수 없다. 디즈니가 ‘라이온 킹’의 무대화를 고민할 때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는 거대한 가면과 동물 인형(퍼펫)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배우들이 가면 탈을 쓰고 무대에서 연기하거나 동물 인형을 조종하며 무대를 꾸미는 것이다. 무려 1만7000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200여개의 퍼펫과 동물의 가면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서 무대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인간 배우는 동물의 가면 속으로 숨는 대신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며 혼연일체된다.

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심바의 삼촌인 스카 역을 맡은 안토니 로렌스는 “배우들이 분장하고 연기를 하면서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는 가면과 인형으로 동물의 캐릭터와 움직임을 표현하는 ‘더블 이벤트(Double Event, 이중 사건)’ 아이디어가 원작 애니메이션을 뛰어넘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극중 코뿔새 역할인 자주와 미어캣 역할의 티몬은 배우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인형과 함께 연기한다. 코끼리는 네 명의 배우가 다리 하나씩 맡아 움직이고, 6개의 가젤 퍼펫은 기계장치로 점프해 무리를 연기한다. 퍼펫은 인간 배우들과 하나 돼 아름다운 ‘몸의 예술’을 완성한다. 무대 위의 생동감 넘치는 동물들의 향연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수백 명의 배우들은 퍼펫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3만4000시간 이상의 공을 들였다. ‘라이온킹’은 배우들의 수고가 차곡차곡 쌓여 완성된다.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고, 거기에 동물 연기까지… 그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라이온 킹’이 다른 뮤지컬과 다른 특별한 어려운 점이에요.”(아만다 쿠네네)

배우들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면서 인간적인 감정을 함께 보여주는 것”(심바 역할 데이션 영)이다. 암사자 날라 역을 맡은 아만다 쿠네네는 “사자처럼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공감할 수 있는 사자의 감정, 즉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며 “동물의 움직임과 인간의 감정을 함께 담아내는 연습이 쉽지 않았는데 그 고비를 넘기니 동작에도 감정이 묻어나면서 날라를 더 복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라이온 킹’은 마스크, 퍼펫 등 코스튬이 정말 많은 ‘헤비(Heavy)’한 작품이에요. 특히 스카는 미세한 마스크 컨트롤러로 마스크를 조정하면서 사람의 얼굴과 동물의 마스크 모두에게서 같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했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안토니 로렌스)

14년째 라피키 역할로 출연 중인 푸티 무쏭고는 “동물 묘사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감정을 배울 수 있었다”며 무대의 모든 순간이 감동이라고 말했다. 데이션 영은 “처음 공연을 준비할 때 동남아시아의 전통 춤과 무용을 활용해 동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의 감정을 담기 위해 고민했다”고 했다.

무대는 곳곳에서 아프리카를 담았다. 700여개의 조명으로 표현한 사바나의 새벽과 땅거미 지는 대지, 정글의 밤하늘은 물론 드넓은 초원과 낮게 뜬 구름, 무성한 정글과 야생동물 무리의 움직임은 공연 예술의 결정체다. 무대에선 영어 대사 외에도 스와힐리어, 줄루어 등 서로 다른 아프리카의 6개 언어가 들리고, 전통 악기로 연주한 아프리카 음악이 울려 퍼진다. 푸티 무쏭고는 “우리 고유의 언어와 멜로디, 아프리칸 리듬의 연주를 들으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우리가 누구인지 매번 느낄 수 있게 된다”면서 “비록 언어가 다르고 모든 언어를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라이온 킹’은 관객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피키의 대사 중에 ‘과거는 아플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도망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는 말이 있어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아플 수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역시 값진 경험이라는 뜻이에요.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지금의 이 상황도 모두에게 아픈 일이지만 이를 통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고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 작품이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나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푸티 무쏭고)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