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제 의자가 딱딱하고 불편하다고요? 불편함을 즐길 줄 알아야 삶이 풍부해집니다.”
건축가 승효상(62)이 자신이 운영하는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의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가구전을 열었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내부를 채우는 ‘조연’이었던 가구가 이번 전시에서는 ‘주연’으로 등장했다.
반듯한 직선 프레임에 어떠한 장식적 요소도 배제된 승효상의 가구들은 차갑고 묵묵한 표정을 하고 있다. 길이 4m에 가까운 긴 식탁 주위로 열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작품의 제목은 ‘수도사들의 식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승효상이 선보인 가구들은 모태신앙으로써 기독교를 믿는 작가가 종교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후계자이면서 ‘빈자의 미학’을 40여년 건축 인생의 테마로 삼아 왔던 그가 이번엔 ‘불편함의 미학’을 테마로 한 가구들을 선보인 것이다.
수도원장의 책상과 의자, 수도사들을 위한 식탁, 평신자들을 위한 장의자, 승방 탁자 등 교회나 성당에서 볼 법한 간결하고 검박한 가구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대학로 동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구들도 빌려왔다. 또 수도원을 밝히는 조명, 승방을 여는 문고리 등 과거에 디자인했던 작품들도 전시됐다.
지난 6일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열린 ‘이로재 창립 25주년 기념 가구전’ 오프닝에서 만난 승효상은 “기독교나 천주교나 불교나 다 같은 것 아니냐”면서 “종교에 대한 편견 없이 오로지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도록에도 ‘우리 모두의 수도원을 위한 가구(Furniture for Monastery for All of Us)’라는 제목이 붙었다. 종교가 있든 없든 각자의 마음 속에 ‘수도원’과 같은 공간이 필요함을 그는 가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수도사들의 의자는 앉기에 딱딱하고 평신도들의 의자는 높이가 낮다. 그런데 딱딱한 의자에서는 나무와 숲의 따스함이 느껴지고, 낮은 의자에서는 호흡이 내려앉고 차분해진다. 불편함을 통해 경건함에 이르고자 한 그의 가구는 채움이 아닌 비움, 높음이 아닌 낮음의 철학이 담긴 그의 건축물을 닮았다.
가구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그의 가구들은 간결한 조형미와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먼저 지름 1m짜리 미얀마산 티크 원목으로 작업한 수도사들의 식탁은 견고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목재의 희소성 때문에 에디션도 2개 정도만 제작될 예정이다.
또 아프리카산 오크 원목을 사용한 평신도장의자는 ‘어깃장(고급 목재가구를 만들 때 나무의 휘어짐을 막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붙인 띠장)’을 덧대 기능성을 강화했다.
특히 승방탁자처럼 친환경 염료를 사용한 라미네이트 목재 가구는 오크 상판에 이어 붙인 어깃장들이 미세하게 튀어나와 있다. 전시장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나무가 숨 쉰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승효상이 디자인한 작품들은 목공예가 박태홍, 조명가 윤병천, 소목장 조화신, 최가철물점 최홍규의 손을 거쳐 제작됐다.
전시장을 찾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승효상의 가구야말로 그의 건축정신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유 전 장관은 1999년 청담 유시어터를 설계를 승효상에게 맡기는 등 그와 20년 넘게 각별한 인연을 유지해오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가구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이달 21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점 호림아트센터 1층에서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