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대표, ‘식물기반 플라스틱 충진소재’ 개발
경량·강성 뛰어나 차부품에 첫 적용…검증받아
연비향상·오염물 배출 저감…글로벌 업계 주목
가전·타이어·페인트 등 적용분야 확대 추진
지구촌에서 한해 생산되는 플라스틱 양은 3억8000만t 정도. 이 가운데 수거돼 재활용되는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알루미늄 80%, 종이 70%에 비해 크게 낮다.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소각용으로 처리되면 그나마 다행. 매립되거나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바다, 토양으로 스며들어 먹이사슬을 타고 인간의 몸 속에 쌓여가고 있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소재가 석유를 연료로 하는 합성수지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더 크다. 인체에 유해함은 물론 플라스틱으로 인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8억5000만t에 달한다.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게 바로 ‘화이트바이오‘. 옥수수·콩·목재 등 재생 가능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화학제품, 바이오연료 등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리그넘(대표 이상현)은 재생플라스틱 소재 원료와 가공제품을 생산하는 테크 스타트업의 선두주자다. 창업 4년차의 리그넘은 기존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무거운 충진소재를 대체하는 ‘식물기반 플라스틱 충진소재(SSIEF)’를 개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충진소재는 플라스틱 제품의 골격을 구성하는 기초수지의 강성을 보강하고, 외형 변화를 최소화 하는 역할을 한다.
SSIEF 충진소재는 흔히 사용되는 광물질 충진소재인 ‘탈크(talc)’에 비해 가볍고, 강성도 높다. 또 자연분해돼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리그넘은 폐목재를 원료로 독자 개발한 생산공정을 거쳐 SSIEF를 생산하는 특허를 가진 유일한 업체다.
리그넘을 창업한 이상현 대표는 바이오메스, 생명공학 등을 활용해 바이오케미칼을 만드는 미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자 출신. LG화학과 GS칼텍스에서 15년간 근무하며 미생물을 활용한 바이오폴리머, 석유대체 바이오연료 개발 등 굵직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이 대표는 “플라스틱으로 유발되는 환경문제 해결 솔루션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하에 창업했다”며 “학자 출신 창업자는 기술개발과 연구에 매몰돼 사업가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설이 있지만, 창업 때부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충분히 타진하고 사업아이템을 결정한 만큼 이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자신했다.
리그넘이 SSIEF 개발에 성공하고 이를 적용한 첫 분야는 자동차용 플라스틱 부품. 쌍용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와 공동으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리그넘의 도전에 물음표를 던졌다. 플라스틱 제품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하는 것이 자동차 부품이기 때문이다. 내구성 뿐 아니라 내열, 내화, 내화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스펙을 맞춰야 하고, 생산설비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도 막대해 스타트업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말들이 많았다.
리그넘의 전략은 ‘역발상’이었다. 이 대표는 “범용 플라스틱 제품 중 최고 레벨인 자동차 부품에 성공한다면 다른 어떤 제품군에도 쉽게 진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개발 이후 2년여에 거쳐 품질검증 과정을 거쳐 차량용 플라스틱 제품 생산이 가능한 소재로 등록되는 성과를 거뒀다”로 말했다.
리그넘의 첫 작품은 쌍용차 티볼리용 경량 도어트림과 테일게이트. 지난해부터 생산되는 티볼리에 SSIEF가 적용 부품이 장착되고 있다. 쌍용차 이외에 국내·외 완성차 업체도 내부적으로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SSIEF 적용 부품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업계가 SSIEF 부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경량화와 이를 통한 연비절감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SSIEF 소재가 차 한 대에 10kg만 적용돼도 석유계 제품에 비해 차량 무게는 0.67%, 연비는 0.56% 개선할 수 있다. 통상 차량 1대 당 50~60kg의 충진소재가 사용되는 것을 감안하면 SSEIF의 경량화 효과는 분명하다. 10만㎞를 주행할 경우 0.13t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수 있어 대기오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완성차 시장에서 전기차, 수소차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며 차량 경량화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SSIEF 소재의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부품으로 성과를 입증하자 다른 산업군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쓰이는 분야라면 어디에든 SSIEF 충진소재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 가전제품 내외·부에 쓰이는 플라스틱 케이스는 물론 타이어 제품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바이오도료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페인트 업계에서도 SSIEF 소재를 활용하는 협업을 시작한 단계다.
리그넘의 SSIEF 소재 기술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SKC의 스타트업 플러스 기술공모전에 선정된 데 이어 유럽 바이오브릿지와 피아트자동차가 주관하는 혁신기술공모전에도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복합소재 전시회인 프랑스의 JEC 컴포지트가 주최한 스타트업 부스터 경쟁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유럽 최대 응용과학연구소인 프라운호퍼와 미국의 기후기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그린타운랩과 클린테크 인큐베이터 어번퓨처랩이 공동 운영하는 ‘카본 투 밸류 이니셔티브(carbon to value initiative)’프로그램에 초청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리그넘은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설비 확충에 들어간다. 충남 금산에 운영 중인 파일럿공장은 월 생산량이 1t 정도에 불과하다. 기술 연구와 설비 테스트가 주목적인 탓이다. 올 연말까지 대전에 연 500t 규모의 공장을 완공해 수요 증가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올해 대전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오는 2028년에는 연 6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조인트벤처(JV) 등을 통해 기업공개(IPO)도 고려할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지만 식의약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유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