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범죄 사건에는 과학수사라는 말이 꼭 따라붙는다. 털 한오라기, 양말의 흙 등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나가는데 과학기술은 필수다. 흔히 이런 과학수사에는 오류나 오판이 있을 수 없다고 여기지만 기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로, 실수와 오판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염된 재판’은 형사사법절차 개선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인 브랜던 L.개릿이 과학수사의 오류로 잘못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결백을 입증받은 오판 피해자 250명을 조사한 르포 사례집이다.
저자는 재판기록을 분석하면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음을 발견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즉 오염된 증거와 부당한 수사, 과학 분석상의 오류 등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시스템상의 문제로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오판 피해사례가 검찰의 인지적 편향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결백의 증거가 사전 검토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 관련된 증거를 무의식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이다.
강압에 따른 복종에 의한 자백도 흔하다. 조사 중에 경찰이 가하는 압력은 불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용의자는 수사기관의 압력에 대체로 순응하게 된다. 주로 ‘집에 가게 해준다거나, 긴 신문을 끝내준다거나, 신체적 위협을 피하는 것’과 같은 대가에 자백하고 만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판 중 13개의 사건에서 피해자를 범죄현장에 데려간 점을 지적하는데, 이는 피해자들을 범죄현장에 익숙해지게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다.
목격자의 기억도 오염될 수 있다. “방금 당신이 가리킨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지 얼마나 확신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 거쳐온 모든 형사절차가 목격자의 확신을 키운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목격자의 마음 속에 있었던 초기의 가장 믿을 만한 인상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은 경찰이 범죄현장에서 현장 증거를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보존하는 것처럼, 범인식별절차 직후 목격자의 진술을 그대로 기록, 당시 목격자가 얼마나 확신했는지를 알아내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밝힌 오판의 원인에는 우리가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꼽는 DNA검사도 있다. 실제로 DNA검사 오류로 무고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3건이 나왔다.
눈길을 끄는 점은 배심원과 언론 매체가 오판을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CSI효과’가 오판 사례에는 반대로 작용한다. 즉 배심원들은 CSI같은 TV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과학증거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데, 유죄를 입증할 강력한 과학 증거가 없으면 유죄판결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CSI효과’라고 한다. 그런데 오판 피해 사례의 경우, 배심원들은 무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과학 증거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언론 매체도 이런 오판에 일조하는데, 목격자들이 사건에 관한 보도나 다른 목격자의 진술을 접하면서 그들의 기억을 오염시키거나 자신의 확신을 더욱 굳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보도는 배심원들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하거나 경찰에게는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도록, 검사에게는 재판에 이기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저자는 무고자들에 대한 국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사려깊게 지적하는데, 손해 배상을 비롯, 직업훈련이나 거주지 알선, 상담, 치료 같은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번역은 국내 형사사법절차 개선 전문가 신민영 변호사가 맡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오염된 재판/브랜던 L. 개릿 지음, 신민영 옮김/한겨레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