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는 토양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커서 품질이 우수한 복숭아가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른 봄에 만개한 복숭아꽃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또 청도는 복숭아 뿐아니라 소싸움과 한재미나리, 씨 없는 반시로도 유명하다 .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청도 읍성, 이곳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동상리, 동천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의 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며 석성과 토성을 혼합해서 쌓았다. 조선시대 선조 때 부산에서 서울을 향하는 주요 도로변 성지를 일제히 수축하는 과정에서 청도 군수 이은휘가 석축으로 다시 쌓았는데 1590년(선조 23)에 착수하여 1592년(선조 25)에 준공하였으며 1995년 1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1.88km, 높이가 1.7m이며 임진왜란 때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기저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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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받기 위해 재경 청도 향우회 이율기 회장을 만나보았다. 이율기 회장은 코멕스전자(주) 대표로 재직 중이다. 기술력이 밑거름인 회사 코멕스전자(주)는 대부분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던 중장비 핵심 부품을 국산화하면서 국내외 중장비부품업계의 리더로 떠오른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청도는 복숭아가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은 아시다시피 산세가 높고 온도 차가 심해서 복숭아가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 보십시오, 복숭아꽃이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모쪼록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많은 분들이 ‘청도’ 하면 ‘복숭아’를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복숭아꽃이 끝없이 피어 있는 경치를 보자 어릴적 즐겨 불렀던 동요가 생각났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복숭아꽃은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동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아찔한 정도로 아름다운 복숭아꽃을 가슴에 담고 발걸음을 옮겼다.이율기 회장의 안내로 찾은 곳은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공원이다. 청도는 삼국통일의 정신적 원동력이 된 화랑정신의 발상지이자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다.

청도군은 1960∼70년대 빈곤과 가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전 세계가 배우는 새마을운동의 중심체 역할을 하기 위해 청도읍 신도리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을 건립하였다.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은 유아, 초중고교생, 가족, 외국인, 일반인 관람객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구성된 새마을운동의 탄생 배경과 발전단계, 우리나라 발전에 미친 영향과 성과, 그리고 새마을운동 세계화 경향 등을 직접 확인하고, 또 함께 어울리면서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교복을 대여해 입었다. 과거로 돌아가서 70년대 교복을 입고 돌아보면 더욱 뜻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빳빳한 흰 카라가 달린 교복을 입은 후 완장은 ‘공주’ 완장을 골랐다. 이율기 회장은 ‘복학생’ 완장을 팔에 둘렀다. “이렇게 교복을 입고 복학생 완장을 두르니 옛날에 껌 좀 씹은 것같아 보이지요?”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다리를 떠는 모습을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잠시 웃었다. 이곳의 안내는 청도문화관광 김선희 해설가가 맡아서 해주었다. ”새마을운동 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그 옛날 못 먹고 못 살던 그때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잘 아시다시피 새마을운동은 과거를 다 지워버리고 새롭게 잘살아보자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잘살아보세’라는 타이틀을 현판으로 걸어두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70년대 당시 삶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입니다. 정말 못살았던 시절에 잘살아보자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했고 그 시작점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 정신과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바탕으로 빈곤퇴치와 지역사회개발을 위하여 1970년부터 전개되었다.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아보자는 운동으로, 농촌경제 발전과 농가소득 향상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공업 중심의 경제개발로 농업의 중요도가 낮아져 도시와 농촌간 소득격차가 많이 벌어지자 농촌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었고, 집권당의 전통적 정치기반을 흔들 수 있는 정치적 불안요소도 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농촌의 새마을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잘살아보자’는 취지였고 새마을회관에 동네 주민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켰다. 지금으로 치자면 마을회관이 될 것 같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이 귀해서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TV를 보러 갈 때 집에 있는 장작을 하나씩 들고 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영화관에 가서 돈을 내고 표를 사듯이 TV 보는 대금을 장작으로 대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가정에 TV가 보편적으로 보급되던 7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이런 풍경이 사라졌지요.” 양쪽으로 문을 열어야 브라운관이 나오는 TV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새마을학교는 70년대 모습 그대로의 풍경을 재현해 두었다. 교실로 들어가자 가운데 석탄 난로가 놓여있고 난로 위에는 물주전자와 양은도시락이 올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데워 먹었는데 아래 있으면 너무 타고 위에 있으면 도시락이 데워지지 않아서 쉬는 시간에 주번이 도시락을 위아래로 바꾸어놓던 풍경이 었고 난로를 보니 그 광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청도(淸道)는 맑을 청, 길도 자를 쓰는데 그래서 산이 맑고 물이 맑은 동네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산과 물처럼 사람들의 인심 또한 깨끗하다고 해서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교실 뒤 게시판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등의 표어가 걸려 있었고 아이들이 그린듯한 그림들도 걸려 있었다. 공원 끝부분에 신거역이 보였다. 신거역은 1967년 신도마을과 근처의 5개 마을 주민들의 건의로 설치되었으나 1988년 이용자가 감소하여 철거되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의 기억을 되살리고 옛 정취를 되살리기 위해 역사와 대합실의 모습을 갖춘 신거역을 복원하였다.

공원을 둘러본 후 청도에서 재배되는 한재미나리 밭을 찾았다. 상품화된 이름인 한재미나리는 청도읍 한재골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로 화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재배되는 지역의 특산물이다. 한재미나리에는 비타민A와 칼륨, 칼슘, 섬유질이 풍부하고 신경통 류마티스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도의 한재미나리가 맛있는 이유는 청도의 맑은 물로 키워서입니다. 그래서 미나리가 맛이 좋고 특히 속이 꽉 차 있습니다. 속이 꽉 차서 거머리라든가 이런 것들이 들어갈 수가 없지요. 그래서 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재미나리입니다. 그런데 한재미나리는 생야채로 먹어야지 절대로 삶아서 먹으면 안 됩니다. 삶으면 귀한 영양소가 파괴되기 때문이지요. 좋은 미나리를 생으로 먹어야만 미나리 특유의 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율기 회장을 따라 낫을 이용해 미나리를 수확해보았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잠시 후에 미나리가 수북하게 쌓였다. 그 자리에서 생으로 미나리를 베어 먹어 보았다. 아삭아삭한 맛과 특유의 미나리 향이 그대로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훨씬 단맛이 강했다.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삼겹살을 주문하자 한재미나리가 따라 나왔다. “미나리와 돼지고기는 환상의 궁합을 자랑합니다. 미나리의 향이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주거든요. 자, 이렇게 먹는 겁니다. 먼저 미나리를 서너 개 집어서 반을 접은 후 엷게 저민 배를 올립니다. 여기에 아카시아꽃도 조금 올리고 새우젓도 약간 넣은 후 잘 익은 삼겹살을 얹어 먹습니다.”

이율기 회장이 가르쳐준대로 쌈을 만들었더니 입안에 가득 찼다. 과연 생미나리의 향이 삼겹살의 누린내를 잡아 삼겹살을 먹는데도 느끼하지 않고 맛이 개운했다. 청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재미나리와 삼겹살의 맛이 환상적이었다.

<글.사진 전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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