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지연 등 손실 보험조항 없어

피해 대부분 수출기업 부담 우려

향후 선적 일정도 악영향 불보듯

아시아-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HMM의 2만4000TEU 급 컨테이너선 1호선 알헤시라스호.[HMM 제공]
아시아-유럽 노선을 운항하는 HMM의 2만4000TEU 급 컨테이너선 1호선 알헤시라스호.[HMM 제공]

만조를 이용해 수에즈 운하에 좌초한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 호를 띄우려던 이집트 정부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수에즈 운하 사태는 4월 중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납기를 맞추기 어려워진 수출기업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2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 통행 중단 사태로 인해 발생한 납기 지연 등 피해는 대부분 수출기업이 부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수에즈 운하 사태로 수출 물량 납기가 늦어지는 등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선사 보험에서 이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직접적으로 우리 수출기업이 화물을 선적한 선박이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해상운송을 통해 가장 많은 금액의 수출을 한 품목은 일반기계(471억달러)다. 대부분 중소·중견업체여서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

현대글로비스와 팬오션 등 10여개 선사의 벌크선 운항이 지연될 경우 역시 자동차나 석유화학 제품 등 수출이 지연된다. 원유나 사료, 광물자원 등 우리 기업이 제품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원료 수급이 늦어질 가능성도 높다.

벌크선사 관계자는 “정기노선으로 운항하는 컨테이너선에 비해 부정기 노선이 대부분인 벌크선의 경우 항해 기간에 대한 유연성이 더 있는 편이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피해는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앞서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유일한 국적 컨테이너선사인 HMM은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와의 협의 하에 이번주에 수에즈 운하를 지날 예정이었던 2만4000TEU 급 컨테이너 선 3척과 5000TEU 급 부정기선 한척을 남아프라카공화국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노선으로 변경 운항키로 결정했다. 또한 가장 먼저 수에즈 운하 진입이 막혔던 2만 4000TEU급 ‘HMM 그단스크호’는 수에즈 운하 인근 해상에 나흘째 대기 중이다.

현대글로비스 역시 27일 이후 출항하는 선박에 대해 희망봉을 경유하기로 했다.

수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를 택하면 약 편도 7일의 항해기간이 늘어난다.

문제는 수에즈 운하 사태가 내달 중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집트 정부와 선주인 일본 ‘쇼에이 기센 가이샤’ 측은 에버기븐 호에 실려있는 1만8300여개 컨테이너 중 일부를 내려 선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항구에서도 하루에 내릴 수 있는 컨테이너 수가 2000여개에 불과한 만큼 운하 한가운데서 제한된 장비로 컨테이너를 하역할 경우 하역 시간은 크게 길어진다. 컨테이너 일부만 하역한다고 하더라도 31일인 이번 사리(밀물과 썰물 차 최대기) 기간에 준비를 모두 마쳐 배를 띄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음번 사리까지 15일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달 중순까지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이 재개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향후 수출 선적 일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HMM은 희망봉 우회 통과로 1주일 늘어난 항해기간으로 다음번 출항 기간도 1주일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디얼라이언스 측과 임시선박 추가 투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최근 물류 대란으로 미주와 유럽노선에 지속적으로 임시선박을 투입해온 터라 추가로 선박을 수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화주와 선사 간 체결하는 운송약관에서 지연에 대한 배상 조항은 없는 경우가 많아 수출기업의 타격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원호연 기자